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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시락 Oct 26. 2022

'셀프 팩트 체크'가 필요한 이유

다시 한 번 반성하고 점검하다


인간이 자기 생각을 갖는 과정을 보면, 처음엔 믿고, 그 다음엔 생각하며, 이를 검증해 보고 난 뒤, 확고한 자기 기준으로 확정한다. 이후에는 더 이상 여기에 대해 회의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사실 책에서 읽었고, 삶에서 느꼈고, 경험에서 얻었고,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것들을 적용시켜보고 수정해오다 보니 의심의 여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의 믿음이 주관적이지 않고 객관적이며, 다른 사람 못지 않게 보편적이라 여기기도 하고, 나아가 남의 밀을 들을 필요가 없다 여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렇게 믿고 살아온 것들이 많다. 사실, 나의 믿음과 생각은 혼동하기 쉽다. '난 이렇게 생각해.'라는 말을 '난 이렇게 믿어.'라는 술어로 대체해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난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해.'라는 말을 '난 사람이 이기적이라고 믿어'라는 말로 대체해 본다면, 정말 내가 생각했다고 여겼던 것들이 그저 나의 믿음에 불과했던 것이 아닐까, 라고 의심할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배웠고, 나는 이렇게 깨달았고, 나는 이렇게 알았다는 것은 그저 믿음에 불과할 수 있다.


난 이렇게 생각해
= 난 이렇게 믿어


그래서 믿음이 올바른 생각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의 믿음을 하나 하나 회의해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 생각한다고 했을 때, 그 생각엔 비판과 판단과 평가라는 정신 활동이 함께 해야 한다. 내가 배우고 깨닫고 알게 된 것들에 대해 비판하고 판단하며 평가할 수 있어야 그 믿음이 진정 살아있는 지식으로 환골탈태 할 수 있는 것이다. 기존의 믿음 그대로 믿어도 되는 것인지, 나의 믿음을 지속적으로 신뢰해도 되는 것인지, 나의 나만의 믿음은 아니었는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정신 활동에 있어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깊은 영감을 던져준다. 방법적 회의란 자기가 갖고 있는 인식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기하는 의심을 말한다. 이를 통해 참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근거 없는 믿음, 불확실한 믿음 등을 버리고 명석판명한 인식의 토대를 마련하여 그 위에 정확한 지식 체계를 쌓아가려는 방법이다. 다시 말해, 그저 의심하기 위한 회의가 아니라 진정한 인식에 도달하기 위해 회의라는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선언은 이러한 방법적 회의 속에서 얻어낸 결과이다. 권위자들에 기대고, 관습을 따르고, 느낌에 의존하고, 착각을 인정하지 않고, 환상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를 버리고 오직 자기의 생각을 통해 얻어진 인식으로 지식을 구축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는 심지어 계산이 틀릴 수 있다는 이유로 수학마저 의심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수없는 회의를 통해 '생각하는 나'에 대해서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각하는 나'에 대해 의심할 수 없다는 말은 인간은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고, 인간은 생각해야 하는 존재이며, 인간인 데카르트는 '생각'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생각이란 어떤 믿음을 갖는 것인데, 그 믿음에 대한 근거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고, 자기의 믿음이 잘못된 근거로 이루어져 있지 않은지 생각해야 하며, 나의 믿음을 다른 사람은 왜 믿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찬성과 반대를 넘어서는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한다
= 나의 믿음에 대한 의심과 반성


생각 역시 갈고 닦아야 더 예리해진다. 자기 생각을 갖는다는 것, 세상에 대한 자기 이해를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의 믿음에 대해 수천, 수만 번 회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가능하고, 이것이 정말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인지 수천, 수만 번 적용해 보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일상적이고 당연하다 여겼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현상의 원리와 구조를 파악하고 여러 방식과 표현으로 설명하는 과정이 곧 생각의 과정이고 철학이란 학문의 기본이다.


한때 뉴스에서 ‘팩트 체크’가 유행했다. 무엇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무엇이 근거가 타당한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팩트 체크’이다. ‘사실’에 대란 사람들의 의심을 ‘객관적 데이터’로 검증하고 비판하는 방법이다. 스스로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의심했던 데카르트는 일종의 ‘셀프 팩트 체크’를 진행한 것이다.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자기자신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자아 붕괴’의 느낌을 가질 정도의 철처함과 엄밀함만이 진정 자신의 믿음을 굳건히 만드는 일일 것이다.


더 듬쑥한 깊이와 더 확장된 사고를 원한다면 엄격한 반성과 훈련이 필요하다. 자기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믿어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자기의 생각을 비판하고 판단하며 평가하는 것도 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스스로 자기의 앎과 믿음에 대해 회의해 본다면 생각의 능력도 커질 수 있다. 각자가 올바른 믿음을 갖고 올바른 지식을 형성하는 것은 결국 모든 사회 구성원이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상식적인 대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일이다.


*블로그 바스락(홈피)

https://www.basol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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