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 를 보고, 영화에세이1 :)
나의 친할아버지는 여든을 조금 넘어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가 마지막 중환자실에서 소리없이 내뱉으신 단어들이 무엇인지 아직도 알 수가 없긴하다. 나와 엄마한테만 무슨말씀을 하셨다는데..
생을 마감하는 시점에 그는 무슨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때당시 나는 그를 슬프게도 억지텐션으로 기쁘게도 대하지 않았다.
그냥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와 나의 사이에는 친근함보다는 불편함, 어색함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관계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대상이였다. 그래서 였는지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가 마지막으로 떠나갈 때는 되게 이상한 감정이 내 몸을 휘감았던 것 같다.
슬픔은 슬픔인데 좀 다른 종류의 슬픔이랄까,
걸어도 걸어도의 료헤이와 토시코는 경상도 산속마을에 살았었던 우리 친할아버지 가족과 매우 흡사하다. 보는내내 내 과거를 마주하는 순간 같았다.
우리 할아버지는 료헤이와 참 많이 닮았다. 무뚝뚝하고 ,미간은 늘 주름져 있고, 유머감각도 없다.
그래서 료헤이 할아버지를 보는데 친근하면서도 불편하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건낼 때는 자신의 과수원에서 사과를 딸 때 거의 대부분 하지말라는 금지어거나,명령어, 또는 실수로 내가 사과를 떨어뜨릴 때의 탄식..!
조상에 대한 뿌리에 대한 대대손손 얘기이거나,전화를 왜 안하냐는 꾸중이였다.
(덕분에나는 내가 의성김씨이고 조상은 김성일이라는 학자양반이고 은계공파 33대손이라는 것을 어딘가 쓸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알게되었다.)
이럴 때 아빠가 좀 도와줬으면 좋았을텐데, 아빠는 할아버지 앞에서는 아무말도 안했다. 아니 못했다.
나는 사춘기 시절 내내,
그놈의 전화 때문에 욕을 먹어야 했다.
전화하기 싫은자와 전화하라는 자 , 전화를 왜 안하냐는 자. 이렇게 셋이서 늘 끝나지 않는 실랑이를 벌였다.
아빠는 용돈을 주거나 안주거나로 나를 강경과 회유책으로 전화를 하게끔 유도 했으며, 그때마다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한참을 망설이며 안부 전화를 할아버지께 건냈다.
그럴 때마다 인류 최대의 발명품인 전화가 야속했다. 전화만 없었어도, 전화기만 없었어도
이렇게 나는 괴롭지 않았을 것을 !
전화의 내용은 그닥 뭐 없다.
" 안녕하세요, 저 누구예요~잘 계시죠? -건강하세요!"
하고 마무리.
전화를 끊고 나면….. 아, 불편하고 오글거리는 감정들이 치고 올라온다. 뚝딱이도 이런 뚝딱이가 없다.
차라리 지금이라면 기술의 진보도 있겠다 할아버지용 내 AI 로봇에게 시키면 용돈도 쿨하게 받고 , 불편하지도 않고 님도보고 뽕도따는 건데 ..라고 상상해본다.
내가 조금 더 살갑고 애교도 많고 사교성이 좋았더라면 할아버지랑 이런 문제에 대해서 트러블이 있진 않았을 것 같다. 근데 나는 타고나길 그런 캐릭터도 아니고 , 그땐 어렸으니까 더더욱 그런 성격이 아니였으므로 나와 할아버지의 관계는 다른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할아버지는 내 성격이 어떻든 초지일관의 태도로,
전화를 걸라고 일년에 몇번 안만나는 나에게 꾸중의 꾸중의 꾸중을 하셨는데, 그럼 더 하기 싫어지는데도 ..
그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할아버지는 서운한 마음을 그렇게 부단히 표현 하셨다.
그 땐 서운해 한다고 생각도 못했다.
그냥 화내는 무서운 할배, 피하자! 의 생각이였지..
그러니까, 우리의 관계는 악순환….
그 후 나는 성인이 되어서 그 관계에서 자유로워졌으며, 전화의 굴레에서도 자연스럽게 벗어났다.
일이 바쁘다는 제법 보통의 그럴듯한 핑계도 있었기에
전화를 안한다는 죄책감또한 가지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돌아와,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하려고 했던 말은
무엇이였을까,
추측 해 보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어떤단어인지 , 문장인지는 모르지만, 사랑언저리의 진심 아니였을까 싶다. 죽기 직전 손녀에게 남겨줄 말은….
사랑에 대한 말 말고 또 있을까,
돌아가시고 한달 후, 나는 갑자기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보는데,이제는 누군가가 이 번호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탁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차마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아니 건다고 해도 여전히 할말 없는 뚝딱이 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받으면 내 마음에 조용한쇼크가 와서 내적 방황을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얼른 그 상황을 피했다.
살아계실 때는 그렇게 전화하기 싫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지나지않아, 스스로 할아버지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는 나를 보면서
여전히 나는 못됬다라고 생각했다. 아니, 어떤면에서는 할아버지같다고 생각했다.
자기만 옹졸하게 생각하는 꼴이 딱 서로 닮은 천생가족이다.
닿지않을 전화를 바라보며, 주인공 료타가 아버지 료헤이와 나중에 야구장을 가자고 빈말을 하고
어머니인 토시코와 함께 나중에 자동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가자고
등떠밀려 말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맴맴돈다. 나 또한 자꾸 나중을 기약하고 있는 듯 하다.
가족 한정으로 더더욱.
제목 :걸어도 걸어도( Still Walking 원제:歩いても 歩いても)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 :아베 히로시, 나츠카와 유이, 키키 키린, 하라다 요시오
개봉 :2009.06.18. / 2016.08.04. 재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