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날 Apr 30. 2021

영재씨 커피집

독박육아 중간에 겨우 얻은 몇 시간의 자유부인 타임이었다. 늘 가는 프랜차이즈 카페가 어쩐지 가기 싫어 어성어성 전에 살던 동네를 걷다 한 구석진 카페에 처음 발걸음을 했다.


영 모르던 곳은 아니었다. 예전 이 동네 살 때 오고가며 자주 간판을 들여다 보곤 했는데 익숙한 커피맛을 찾아 돌아 걸어 스타벅스로 커피를 사러 다녔더랬다. 이곳에 한번쯤은 들러보고 싶던 이유는 하나다. 이름. 영재씨, 영재씨 커피집. 


 2010년도 초반, 내가 몸담은 두 번째 회사였던 그 곳엔 여자 정규직이 손에 꼽았다. 그 중에서도 난 가장 나이가 어린 27살의 정규직 여직원이었다. 결코 작은 규모의 회사가 아니었음에도 공공기관의 특징상 수많은 인턴과 계약직 직원들이 손이 많이 가는 대부분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 속에서 오래 버티고 경쟁해 운이 좋으면 계약이 연장되고 또 운이 좋으면 무기계약직이 되고 정말 운이 좋다면 정규직이 되는, 정규직과 계약직은 호칭도 달랐던, 정규직과 계약직의 모임이 따로 있던, 참으로 수직적인 문화가 팽배했던 그런 곳이었다. 난 정규직으로 입사했다. 출근과 동시에 이유없이 직원들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나보다 경험이 풍부한, 하지만 아직 계약직인 동료 직원에게 업무를 물으면 “책임급인데 직접 찾아보시죠” 라고 답했다.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건 아니지만 나도 그저 한낱 신입사원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입사했다. 영재. 내 인생 첫 부사수. 나의 인턴. 유일한 내 편. 수많은 적군속에서도 단 한명의 내 편이 있다면 살아남을 수 있다. 영재의 계약기간이 결국 연장 없이 종료되던 날 저녁을 먹고 헤어지던 서울역 플랫폼에서 껴안고 난 이제 너 없이 어쩌냐며, 언니 이제 나 없이 어쩌냐며 울었던 영재. 


 부산에서 출장업무를 마치고 놀고가자며 신났던, 알고보니 둘이 함께 시작했던 운전면허 필기시험 응시 마지막 날인걸 알고 꽉 막힌 광안대교를 뚫고 간신히 시험장에 도착했던, 남자친구와 만나고 헤어지고를 몇 년째 반복하며 지쳐있던 영재. 언니는 좋겠다 언니같은 사람이 왜 이렇게 친절해요 라던, 난 너무 작아서- 라며 별수 없다는 불만의 표정을 짓지만 사실 그렇게 너무 작은 아이는 아니었던 영재. 언니 자꾸 아파서 미안해 일도 많이 못도와주고, 라고 밤 11시 퇴근길에 문자 보내던, 잔병치레 많던 영재. 앉은 자리에서 빈츠 6개와 천하장사 소세지 3개를 순식간에 해치우던, 과일은 입에 안 대던 영재. 10월의 신부가 될 영재가 생각나는 이곳, 영재씨 커피집. 물론 이곳의 영재는 중년의 남자 사장님이시지만.


 나도 모른다. 스치는 수많은 인연 중 누군가와 왜 유독 가까워 지고 편안하게 느끼며 같이 있으면 즐거운지. 그 피고 지는 인연들 중 네가 남았다는건 확실히 알지. 


 영재 보고싶네. 결혼할 때 좋은 거 사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어느 약사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