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무척 좋아하는, 믿고 보는 작가다. 최근작부터 야금야금 읽다가 남아 있던 소설집과 장편 소설을 바쁜 일이 일단락되자 가장 먼저 손에 들었다.
최정화 소설은 기본적으로 어둡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소한 순간순간에 번쩍 스치고 지나가는 비합리적이고 모나고 비뚤어지고 해로운 마음들을 노골적으로 묘사한다. 인물들의 그런 모습 속에 우리 자신이 보인다. 인간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보기 싫어한다. 그래서 이런 소설은 대중적일 수 없다. (용기 있는 독자가 많아지기를.)
작가가 사회적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다루는 방식 또한 지지한다. 혹자는 더 직설적인 편을 선호하겠지만, 접근법은 다양할수록 인류에게 좋을 테고 개인적으로 나는 돌아가는 길이 더 궁금하다. 돌려 말하는 측면에서 개척자라는 생각이 드는 몇몇 작품이 있다.
이번에는 그저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들을 읽는 순수한 즐거움을 누렸다. 다음에는 출간 순서대로 다시 한 번 읽으며 더 많이 생각하고 정리하려 한다.
그 뒤로 나는 땅을 보며 걸었다. 그들을 마주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들이 내 얼굴 앞에 자기 얼굴을 들이밀지 않는 한, 더이상 그들은 내 앞에 나타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을, 그들이 내 집에 잘못 찾아오는 그 일을 완전히 까맣게 잊을 수 있었다.
(77) <잘못 찾아오다>
외롭고 소심하고 자신만의 무엇을 지키려는 사람들. 거기에 내 모습이 비치고 내가 사회를 대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보일 때, 외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때로 공감하고 작가에게 이해받는 느낌이 든다.
사장은 자기 차를 끌고 가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탔다. 엔진의 열기와 떨림, 콧속 감각을 마비시키는 가스 냄새 같은 것들이 갑자기 그리웠다. 아마 일종의 사치일 것이다. 다시 반복될 리 없다는 확신이 있다면 나쁜 경험들도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78~79) <잘못 찾아오다>
줄거리상 중요한 장면이나 요소가 아닌데도 일상의 통찰이 담긴 대목이 자주 나오는 것도 사랑스럽다.
죽어가는 참새를 바라보면서 즐기는 시선은 성인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곤경을 바라보며 킬킬거리는 성인들, 다른 이들에게 수치심을 주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성인들 말이다. 불필요한 질서를 만들고 거기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엉뚱한 적의를 뒤집어씌워 제물로 삼는 성인들 말이다.
(142) <손>
“불필요한 질서를 만들고 거기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엉뚱한 적의를 뒤집어씌워 제물로 삼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기성 질서 혹은 특정 집단의 이익에 필요한 질서를 불필요한 질서로 느껴 본 적이 있다면, 여기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편을 가르고 싸우려고만 하는 요즘에는 더욱 심하다. 많은 사람이 어떤 질서가 필요한지 불필요한지 의심하지 않고, 도덕이나 인권을 고려하지 않으며 자기 이익만 챙기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당시에 나는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있었다. 붕괴된 건물이야말로 사람이 없는 조용한 건물이며 죽어 있는 곳이라는 애초의 생각과 달리 건물은 사람들이 득시글거리는 L시에서 가장 시끄러운 곳이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왔고 온전한 형상은 없는 채로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최근에는 불에 그슬린 흔적들도 종종 발견했는데 잿빛으로 뒤덮인 사물들에서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붕괴된 건물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달려들어 제 말을 쏟아놓았고 나는 비지땀을 흘리며 그것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덕분에 주말에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음악조차 듣지 않은 채 불을 끄고 방안에 드러누워 있었다. 창문 바깥에서 이따금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거나 바람이 불어 커튼이 날리는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듣거나 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197~198) <모든 것을 제자리에>
폐허의 풍경, 덩달아 황폐해지는 내면. 최정화 소설은 이를 탁월하게 서술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볼 수 있는 장편 ⟪흰 도시 이야기⟫ (문학동네 2019)에서도 그랬다.
일상의 풍경들이 삽시간에 회색의 폐허로 무너지는 것과는 정반대로 일을 할 때는 그렇지 않았고 온통 잿빛인 공간에 오히려 자꾸만 색깔이 덧입혀져서, 잿빛의 건물 속에서도 나는 무지개를 만나곤 했다. 때때로 그을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햇빛 조각이 폐허에서 만든 조명들은 눈에 부실 정도로 찬란하고 아름다웠다. 형상들이 무너진 암흑의 공간에서 그렇게 새로운 이미지들이 태어나는 것을 나는 넋을 놓고 바라보고는 했다. 부서진 계단 위로 떨어져내린 햇빛 조각을 바라보며 나는 한 칸 더 위층으로 올라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201) <모든 것을 제자리에>
그리고 폐허 속에서 새로이 탄생한 아름다운 이미지들.
작가는 전에는 “정확한 말의 힘을 믿”었는데 어떤 계기로 “정확한 말보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말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은 “그렇지 못하고 그것 깨닫게 되기까지 내가 헤맨 흔적이다.”라고.
나는 여전히 정확한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감정적으로 힘들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적어도 나는 그렇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의 최정화 소설에서 남달랐던 점이다.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