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 소설은 회사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루는데, 노조에 침투해 스파이 노릇을 하는, 원래 순진하고 순박했던 무오가 주인공이다. 자의로 스파이 노릇을 한 것은 아니고, 조직적으로 노조를 방해하는 세력의 편에서 일하는 이부의 꼬임에 넘어간 것이다.
노조의 투쟁을 다룬 작품들은 여럿 있지만, 이 책은 한 가지 측면을, 한 사람의 내면을 집중해서 보여 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무오는 성실하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청년이다. 오늘날 어느 고용주라도 좋아할 만한 인력이다. 그런 무오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관심을 보여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이부의 속내를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는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개인의 정치적 무관심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과정을 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무오는 노조원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 변한다. 사실은 노조가 옳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오는 그런 의심을 비교적 초기에 갖게 되고, 그래서 자꾸만 맡은 일을 망치지만, 노조 방해는 무오가 하지 않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계속 진행되고 심화된다. 무오가 있든 없든 이기는 쪽은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무오는 노조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여러 번 일을 망치고, 여러 번 이부와 연락을 끊었다. 다시는 스파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먹고살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이부의 진실되진 않지만 따뜻한 말 한마디 때문이기도 했다.
반드시 노조 투쟁을 해 보지 않았더라도 웬만한 회사에 다녀 본 사람이라면, 외면하지 않으면 직장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각종 부조리를 겪어 봤을 것이다. 무오가 겪는 갈등은 이럴 때 우리가 느끼는 갈등과 그 성격이 같다.
해고 노동자의 농성에 관한 소설이라고 해서 짐작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내용이라 이번에도 최정화 작가의 남다르고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했다. 선과 악이 깔끔하게 구분되지 않는 인간의 현실도 잘 반영되어 있다.
도트의 뒤를 쫓아 술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무오의 발걸음이 원치 않는 곳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조금씩 느려졌다. 전에는 이처럼 도트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적은 없었는데, 그의 뒷모습은 고작 피로한 사십대, 무기력하고 평범한 사십대에 불과했다. 무오는 당황했다. 도트는 너무 많은 생각에 짓눌려 보였고 스스로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처럼 나약해 보였다. 시위 때 보았던 당당함과 과감한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102)
신고 있는 구두가 그의 몸을 이끄는 듯 발이 먼저 나가면 몸은 그 힘에 그저 이끌려가고 있었다. 그가 고통스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무오가 상상한 울분이나 슬픔은 이렇게 술집에서 골칫거리 취급이나 당하며 쫓겨나는 시시한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슬픔은 좀 더 고결한 것이고 그의 고통은 좀 더 진지하고 깊이가 있는 것이어야 했다. (110)
무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 때문에 움직이지’라는 문장이 마음에 걸렸다. 그 대부분의 사람들에 자신이 속한다고 생각하니까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그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돈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사는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고 있다.’
무오는 그렇게 중얼거려보았다. 이부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것. 이런 것을 다른 사람들은 믿음이라고 부르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궁금해하지 않는 것, 나 대신 다른 사람이 알고 있으니까 나는 몰라도 되는 것. 이런 것이 아마 신앙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부가 신이 되는 건가. 그건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이부가 신이라면 이부에게 연락이 올 때마다 이토록 달갑지 않은 기분이 들 리 없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무오는 화선지 조각처럼 얇은 낮달을 올려다봤다.
‘착각하지 말자. 나는 농성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고 있다.’
다시 한 번 그렇게 중얼거렸다. 자꾸만 헷갈렸다. 자기가 농성대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착각 속에서 무오는 진짜 금아기획에서 일을 했고 불시에 해고를 당했고 복직을 위해 동료들과 함께 싸우고 있었다. 무오는 그들이 사용하는 말투를 조금씩 닮아가고 행동거지도 비슷해지고 있었다. 자기가 싸우는 사람이라는 기분에 도취되기도 했고, 실제로 헬기에서 최루액 봉지를 떨어뜨릴 때는 진짜로 격분해서 새총을 쏘아댔다. 자신이 자기 옆에 있는 이들과 같다고 느꼈다. 실제로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그들과 함께 웃었다.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196~197)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 이러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고 말 것이다. 몸뚱이만 살아 있으면 뭘 하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게 되어버린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다. (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