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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요 Nov 13. 2023

#04 원단시장에 가다.

선명해지는 시장의 모습만큼 저의 꿈도 선명해지는 기분입니다.



 ‘포토샵 도구가 세상으로
쏟아진다면 이런 모습일까…?’

 원단시장의 첫인상은 이러했습니다. 수만 가지의 패턴과 다채로운 색상의 원단, 빽빽하게 들어선 가게들. 그 속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상인들이 오버랩되는 이곳이 말로만 듣던 동대문 종합시장이었습니다. 이곳에는 없는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아니 없는 것은 만들어서까지 세상에 창조해 내니 제 몸이 통째로 포토샵 안에 들어간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동대문 원단시장은 A, B, C, D동 그리고 신관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간 헷갈리는 게 아닌지라 요즘엔 따로 동행을 도와주는 서비스 업체 같은 곳도 있더라고요. 그만큼 몇 번을 가도 참 어려운 곳입니다. 혹시 처음방문을 하신다면 구매의 목적보다 자주 오가며 익숙해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몇 차례 다니다 보면 원단이 눈에 익고 되는데, 이때 본인이 원하는 디자인의 원단을 구매하고 샘플을 제작하시면 됩니다.


샘플제작을 위해선 많은 스와치를 시장에서 들고 오게 되는데, ‘스와치’는 마트에 있는 시식코너처럼 작게 조각낸 원단을 말합니다. 샘플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견본이에요. 리본의 경우에는 스와치 묶음이 따로 있지 않고 적당량의 리본을 잘라가시면 됩니다.


 원단을 을 구매하고 난 뒤  / 작업실에 가져온 양단 스와치  


양단, 노방, 물실크 등 한복원단의 경우 일반 원단에 비해 생산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스와치가 준비되어있지 않은 곳도 많습니다. 그럴 땐 사장님께 받으신 명함과 마음에 드는 원단의 사진을 함께 찍어두시면 집에 가도 기억하기가 좋습니다. 저도 처음엔 거래처가 없으니 무턱대고 예뻐 보이는 원단을 1야드(90cm)씩 챙겨서 가져갔습니다. (원단에 대한 내용은 뒤편에 자세히 적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에 못해도 두 번씩은 시장에 나가니 가게 사장님들과 제법 친해졌습니다. 사실 혼자 일하는 제게 시장에 계신 사장님들이 저의 거의 유일한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한복원단시장은 젊은 사장님보다 오랫동안 일하신 가게 아빠뻘의 사장님이 훨씬 많아요. 제 나이보다 긴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듯했습니다.

한 번은 지금 유행하는 아이돌의 퓨전(?) 한복 무대의상을 보여드렸더니 정말 이런 옷을 요즘 친구들이 좋아하냐며 재밌어하시며 예전 같았으면 기생이 입는 옷이라고 아무도 안 입었을 거라며 허허 웃으시기도 했습니다. 갸우뚱 거리는 아저씨의 뒷모습 너머 긴 세월 동안 자신의 작업실에서 영혼을 꾹꾹 눌러 담아 작업하셨을 세월의 작업물이 비치는 듯했어요.


(왼)좁은 시장속 자리잡은 미싱작업실 / (오)매일 정직하게 작업을 해오신 사장님의 손


자연스럽게 점점 그곳에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모두 어쩌다 보니 소개로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필요한 일손이나 제품을 물어보면 아는 곳을 연결해 주시는식으로요. 뭔가 이분들의 생태계에 점점 흡수되는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자개함 거래처를 물어봐도 어떻게 아는 곳을 소개해 주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막연하기만 했던 시장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져갑니다. 선명해지는 시장의 지도만큼 저의 꿈도 선명해지는 기분입니다.




2023년 7월 13일


시장사람들과 점점 친해지고 있다. 본인의 자리에서 해야 하는 일을 정직하고 완벽하게 해내는 장인의 모습을 볼 때면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멋있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말일까.


드러내는 게 당연한 시대 내 주변에는 온통 멋있고 싶어 안달인 사람들뿐인데 이분들에겐 멋이라는 게 뿜어져 나온다. 묵묵히 그리고 정직하게 자신만의 작업 공간에서 멋을 지어가는 사람들.

생각해 보니 일단 멋이 있는 사람이 만들어낸 창작물은 모두 멋진 것 같다. (당연한말인가?) 멋을 짓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거니까. 이분들과 함께라면 나도 곧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아까는 북쩍이는 골목을 지나가는데 어제 한번 말을 건넨 사장님께서 “요즘 자주 보는 아가씨네!”라며 환한 미소를 건넨다. 커피를 들고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내게 “어휴 나도 커피 좀 먹고 싶어”라고 말하시는 할머니께 "제 거 좀 드세요!" 하며 너스레를 떨어보기도 했다.

오고 가는 정겨움이 숨 쉬는 시장을 거닐며

일도 사람도 삶을 대하는 태도도 함께 배우고 있다.


2023년 7월 12일

시장원단가게 앞 커피가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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