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가 경험한 것 중 가장 큰 영감을 준 사람은 우리 동네 장님할아버지다. 중풍까지 있으셔서 몸도 불편하신데, 놀랍게도 매일 새벽 5시가 되면 보행기를 꼭 잡고 홀로 집 앞을 30분간 걸으셨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큰 폭설에도 늘 한결같았다.
내가 이 장면을 볼 수 있었던 건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뉴욕 여행경비를 위해 매일 새벽5시에 일어나 헬스장 인포메이션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충 4개월 정도 일했는데, 당시 ‘아 괜히했나..‘ 싶은 의심과 투정 섞인 푸념으로 집 밖을 나섰다. 그때마다 할아버지를 만났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힘껏 생을 맞서는 할아버지의 태도에 ‘내가 무슨생각을 한거지’ 하며 절로 겸손해졌다. 가끔 폭설이 내리는 날엔 며느리로 보여지는 분이 그 옆을 함께 걸었다.
깜깜한 새벽 5시. 앞이 보이지 않는 사경을 뚫고 성실하게 걷던 장님 할아버지. 오히려 앞이 보이지 않아 새까만 새벽이 두렵지않으셨던걸까? 젊은 나보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아 보였다. 무언가를 포기하고 싶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자빠져있을 때면 이름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가끔 생각난다.
지금도 건강하셨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