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부동산 투자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학교와 집을 오가려면 무려 4시간이나 걸릴 것 같아, 처음으로 자취를 해보겠다며 엄마의 손을 잡고 여러 동네를 물색했다. 그러던 중 네이버 카페에서 <쉐어하우스 - 방 한 칸 빌려드려요>라는 글을 발견했다.
압구정 한양 아파트. 나는 집보다 치안에 더 민감한 편이다. 대학생인 나는 방 한 칸에 적당한 룸메이트 아주머니와 살면 괜찮겠지 싶어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집이라기엔 빛 한줄기 없이 깜깜했고, 처음보는 온갖 럭셔리 가구들로 집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집이 아닌 전시관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어정쩡하게 서서 “가구들이 집에 비해 많이 크네요”라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예전엔 엄청 잘 살았거든. 빌딩이 몇 채고 집 평수가 어땠는데, 지금은 이 집에서 살고 있다고” 하셨다. 그 순간, 화려한 가구들이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쌓여있는 커다란 가구들로 인해, 집의 동선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겨우 발 하나가 들어갈 틈이 있을 정도였다. 이 집에 살기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가구를 새롭게 배치해야 할 것 같았다. 실제 집은 40평대 정도로 좁지도 않았지만, 거대한 가구들이 창문을 가로막아 실내에는 한 줄기 빛조차 들어오지 않았고, 안락함은 느낄 수 없었다.
과거 성취가 오히려 아주머니의 현재를 억압하고 있는것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영광은 자산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부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나는 아리송한 마음을 안고 집 밖으로 나서며 엄마에게 다른 곳으로 가자고 말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왕년에 어른’이 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참고로 나는 결국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하고, 그 해 집에서 4시간을 통학하는 통학지옥을 경험했다.)
어른이 될 수록, 과거의 성공은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기고, 현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오늘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의미가 아닐까? 가만히 보면, 과거의 영광에집착할 때 현재의 삶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