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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Jul 06. 2021

디지몬,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The last element

The last elment


휴먼 스피릿을 사용하면 휴먼형 하이브리드체 디지몬으로 진화한다. 비스트 스피릿을 사용하면 비스트형 하이브리드체 디지몬으로 진화한다. 휴먼 스피릿과 비스트 스피릿을 동시에 사용하는 진화를 더블 스피릿 에볼루션이라고 칭하는데 그럴 경우 더블 스피릿 하이브리드체로 진화한다. 디지몬 프론티어에 나온 아르다몬과 베오울프몬이 더블 스피릿 하이브리드체 디지몬이다. 스피릿을 두 개 사용했기 때문에 휴먼 스피릿과 비스트 스피릿보다 훨씬 강한 힘을 낸다.


스피릿을 열 개 사용해서 하는 진화를 하이퍼 스피릿 에볼루션이라고 한다. 두 개만 써도 충분히 강해지는 스피릿을 열 개나 사용했기 때문에 하이퍼 스피릿 에볼루션으로 진화한 디지몬은 아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디지몬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인 디지몬 프론티어는 이런 식으로 스피릿을 사용해 더욱 강한 힘을 얻는다. 스피릿 한 개보다 두 개가 더 강하고 두 개보다 열 개가 더 강하다. 작중에서 최종 진화 디지몬으로 나오는 스사노오몬은 스피릿을 스무 개 모두 사용해서 진화한 디지몬이다. 프론티어의 파워업 방식은 아주 단순하다. 그냥 스피릿을 많이 쓰면 더 강한 디지몬으로 진화할 수 있다.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디지몬 프론티어는 여러모로 이질적인 작품이다. 가장 이질적인 점을 꼽는다면 바로 아이들에게 파트너 디지몬이 없고 스피릿을 사용해서 스스로 디지몬으로 진화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디지몬 프론티어에서는 디지몬과 인간과의 유대나 교감이 나오지 않는다. 인간이 곧 디지몬이기 때문이다. 네몬과 보코몬과 동행하지만 그들은 감초 역할을 해줄 뿐이다. 디지몬 프론티어는 인간과 디지몬 사이의 유대와 교감 대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유대에 집중한다. 자신이 가진 힘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더욱 강력한 스피릿 에볼루션을 하려면 더욱 많은 스피릿이 필요하지만 각자 가지고 있는 스피릿의 개수는 한계가 있으므로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스피릿을 전달받아야 한다. 스피릿 두 개를 사용해 진화하는 더블 스피릿 에볼루션은 개인이 해결할 수 있지만 스피릿 열 개를 사용해야 하는 하이퍼 스피릿 에볼루션부터는 하이퍼 스피릿 에볼루션이 가능한 우정훈과 선우현에게 동료들이 자신의 스피릿을 전해준다. 때문에 디지몬 프론티어에서 후반부 전투는 우정훈과 선우현 두 사람의 몫이며 도영, 은비, 가람, 윤은 두 사람에게 스피릿을 전달하고 응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프론티어는 이러한 비중 문제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캐릭터 간에 비중 배분이 너무 균등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정훈과 선우현이 각각 카이젤 그레이몬과 매그너 가루루몬으로 진화해서 최전선에서 싸울 때 나머지 네 사람은 안전한 곳에서 그들의 싸움을 응원할 뿐이니까.


물론 디지털 월드를 파괴하려는 로열나이츠와 직접 칼을 맞대고 싸우는 사람은 정훈과 현이지만 그렇다고 싸움이 그 두 사람만의 몫인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힘에 동료들의 스피릿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직접 싸움에 임하지 않는 그들은 안전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피릿이 없어 진화할 수 없기 때문에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싸움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정훈과 현이 직접 진화해서 총과 칼로 적과 싸우는 동안 나머지 네 사람은 그 현장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두 사람에게 전달한 다음에. 원래 대부분의 싸움은 최전선으로 나간 누군가와 그 뒤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프론티어의 유대 또한 이와 비슷하다. 스스로 디지몬으로 진화하는 아이들은 파트너 디지몬이 없기 때문에 서로의 디지몬이 합체할 일도 파트너 디지몬과 합체할 일도 없다. 가장 마지막 싸움에서는 모두 함께 스사노오몬으로 진화하지만 그건 마지막 싸움뿐이다. 그들은 그냥 최전선에 나가는 두 사람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길 뿐이다. 자신의 스피릿을, 싸움의 성패를.


물론 유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모든 힘을 받은 정훈과 현이 가장 강한 디지몬으로 진화하는 것도 아니다. 하이퍼 스피릿 에볼루션은 그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유대일 뿐이다. 그것이 언제나 승리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그들이 맞서야 하는 적은 유대보다 강한 디지몬들이다. 그들의 최선은 늘 패배하고 실패한다. 정훈과 현은 듀나스몬과 로드 나이트몬에게 내내 패배만 한다. 디지몬 프론티어의 후반부 에피소드는 아이들이 로열나이츠에게 패배하고 디지털월드를 지키기 위해 또다시 그들과 맞서고 또 패배하는 일의 반복이다.


진화도 하지 못하는 인간의 몸으로 정훈과 현의 싸움을 지켜봐야 하는 네 사람은 아마 비슷한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할 수 있는게 고작 스피릿을 전해주는 일뿐이라는 사실과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는데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말이다. 최선을 다해도 이길 수 없는 싸움이지만 아이들은 스피릿을 전달하고 전달받은 스피릿으로 싸움에 임한다. 이길 때까지, 이길 때까지 싸운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맞기만 하다가, 주먹이라도 뻗어보다가, 겨우 한 대라도 때려보다가, 아주 작은 상처라도 입히다가, 치고받고 싸우다가, 아주 약간의 우세를 보이다가, 싸움 전반적으로 우세를 보였지만 작은 틈을 놓쳐 패배했다가


마침내 승리한다. 그들은 이미 승리하고 있었다. 이길 때까지 싸우기로 다짐한 순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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