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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Jul 13. 2021

디지몬 -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아이들의 시간

아이들의 시간


이 글에는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인연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디지몬 어드벤처 구작의 주인공인 태일의 생년은 1988년이다. 그는 지금 한국 나이로 봤을 때 2020년 기준 33살의 나이다. 더 이상 아이라 할 수 없는 나이다. 그는 어른으로써 어떤 몫을 해내야 한다.


디지몬 어드벤처 트라이와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인연은 세계를 구해낸 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이들은 모두 고등학생 혹은 대학생이 되었고 이제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하느냐보다 앞으로 어떤 진로를 선택하느냐가 더욱 중요해졌다. 아구몬은 워그레이몬으로 진화해 위기상황에서 태일이를 구해낼 순 있지만 태일이의 진로를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선택받은 아이들은 싸우는 와중에도 다른 것들이 보인다. 악한 디지몬과의 싸움으로 인해 사람들이 입는 피해나 세계를 구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 자신들의 시간 같은 것들. 어른이 된 아이들의 고민은 트라이에서 정석이 했던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어째서 나야!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싶은 녀석이 싸우면 되잖아!


그들은 어린 나이에 세계를 구했지만 세계를 구했다고 그들의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열두 살에 세상을 구한 태일은 그 후에도 한 살, 두 살 계속해서 나이를 먹으며 신태일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선택받은 아이들의 모험은 유년시절 이야기이고 그들이 망설이지 않고 싸울 수 있던 까닭은 그들에게 절대적인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모험할 당시 디지털월드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현실세계의 시간은 전혀 흐르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온전히 세계를 구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부여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포카리몬과의 전투 이후 디지털월드와 현실세계의 시간이 동일해졌고 때문에 아이들은 싸움을 치를 때 각자 개개인의 시간을 사용해야 했다. 디지털월드로 넘어갈 때 그들은 현실세계에서 부재 상태가 되었고 현실세계에서 싸움을 치르고나면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더 이상 선택받은 아이로만 살 수 있는 시간 같은 것은 없었다. 세계를 구하는만큼 자신의 진로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을 잃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태일은 싸움을 망설이기 시작했고,  정석은 싸우는 것을 거부하게 된 것이다.


라스트 에볼루션은 거기에 더해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파트너 디지몬과 헤어져야 한다는 설정까지 가져온다. 사실 디지몬 시리즈는 언제나 그랬다. 아이들은 디지몬과 모험을 하며 성장하고 모험을 마치고나면 디지몬과 헤어진다. 디지몬과 이별까지가 아이들의 성장이다. 청소년 시절의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선택받은 아이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어른이 되어 더 이상 선택받은 아이가  아니게 되는 순간이 오자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선택받은 아이들이기를 바란다. 디지몬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아이들이 디지몬과 헤어지지 않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선택받은 아이로서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즉 세계의 위기 앞에 나서지 않고 디지몬과 함께 싸우지 않으면 디지몬과 헤어지지 않을 수 있다. 진화는 이별을 앞당긴다. 자기 자신으로서 위기를 외면하고 살아가면 계속해서 선택받은 아이로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선택받은 아이로서 싸우기로 결심한다. 비록 이 싸움이 끝나면 어른이 되고 디지몬과도 헤어지게 되겠지만.


파트너 디지몬과 헤어지는 것으로 그들은 완전히 어른이 된다. 모험은 모두 지난날이 되고 디지몬과의 추억 또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어떤 날이 돼버린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선택받은 아이들은 현실을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서 행동할 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곧 있을 시험을 포기하고, 소중한 존재와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계를 구할 선택받은 아이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때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태일에게 많이 컸다고 말하며 이내 사라지는 아구몬은 어쩌면 태일이가 옳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바깥으로 보여주는 증표였을지도 모른다. 비록 디지몬의 진화는 궁극체가 끝이지만 그 대신 선택받은 아이들이 자신의 시간을 선택받은 아이로서 살아가는 것으로 진화를 이어나갈 것이다. 그 시간을 모두 지나고 나면 아이들은 다시 디지몬과 만날 것이라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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