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를 해보았다
퇴사하고 뭐하지?
자기 객관화를 해보았다.
일이 나와 맞지 않아 퇴사를 했으니 이번에는 나와 맞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잘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 그러려면 내가 뭘 잘하고 뭘 잘할 수 있으며 뭘 잘해야 하는지부터 상세히 알아야 했다. 내가 잘하는 게 뭐지? 뭔가 한 번에 탁 떠오르는 게 없다. 내가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은 아닌데 그래도 나름 성취도 있었고 주변에서 뭔가 잘한다는 말도 해줬던 걸로 아는데 그 뭔가가 뭔지 기억이 안 난다. 어? 나 잘하는 거 없나? 왜 생각이 안나지?
잘하는 거 찾기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잘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최근에 깨달은 사실 중 하나인데 나는 잘해야 하는 일보다는 잘하고 싶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잘할 수 있게 된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아무래도 내가 흥미 위주의 사람이라 그럴지도.
요즘 잘하고 싶은 건 다름 아닌 배드민턴이다. 지난여름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 친구와 집 앞에서 배드민턴을 치기 시작한 게 어느새 세 달이 넘어가고 있다. 처음에 비하면 이제 랠리도 꽤 되고 전보다 더 오래 칠 수도 있게 됐지만 그래도 좀 더 잘 치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배드민턴으로 먹고 살 건 아니니까. 이건 차치하고.
생업과 연결할 수 있는 잘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 있을까? 실은 그냥 누워있고 싶다. 어쩌면 나는 그냥 낮에 혼자 카페에 가고 싶어서 회사를 관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아마 반 이상은 사실일 것이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잘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잘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겠다. 친구들이 ‘너 이런 거 잘하잖아’라고 말해줘도 ‘그렇긴 하지만 그걸로 돈 벌어먹고 살 정도는 아니지’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친구들이 내게 말해준 내 장점은 다음과 같다(기억나는 것만 써 본다).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
농담을 잘한다.
글을 잘 쓴다.
이상한 소리(워딩 그대로 적자면 쌉소리)를 잘한다.
목소리가 좋다.
섬세하다.
특이하다.
더는 기억 안 난다. 아마 저 위에 쓴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한 것들이겠다. 자 이렇게 장점들이 있으면 저걸 활용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저것들을 모두 반박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그건 당신이 나와 관계있는 사람이고 내가 당신에게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 얘기까지 들어주기에는 내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농담을 잘한다->농담 잘한다고 누가 돈을 주진 않는다.
글을 잘 쓴다->이건 그냥 돈이 안 된다.
이상한 소리를 잘한다->이것도 농담과 동일하다.
목소리가 좋다->그렇다고 성우를 할 수는 없다.
섬세하다->섬세한 걸로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내가 섬세한 것도 잘 모르겠다. 그냥 당신이 나를 너무 좋게 봐주는 것 같다.
특이하다->나 솔직히 하나도 안 특이하다.
모두 반박했다. 이쯤 되면 그냥 스스로에게 어깃장을 놓는 수준이다.
자기 객관화는 스스로를 높이는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를 낮추는 건 더더욱 아니다. 좋은 점과 좋아질 수 있는 점을 동시에 찾는 일이다. 나는 못하는 게 없다고 하는 것도 자기 객관화가 아니고 나는 잘하는 게 없다고 하는 것도 자기 객관화가 아니다. 명백히 나는 후자의 관점에서 자기 객관화에 실패하는 중이었다. 주변에서 일러주는 내 장점이 분명 장점이 맞는 것 같고 나도 어느 정도 인정이 되는데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냐? 생각하면 그 정도는 또 아닌 것 같다. 그냥 주변에서 조금 잘하는 정도. 그걸 가지고 사회에 나가 나만의 무기로 쓴다고 생각하면 또 그 정도 수준은 아닌, 예를 들면 친구들 사이에서 좀 잘생긴 친구 정도인 것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좀 잘생겼다고 연예인이 될 순 없으니까.
퇴사하면 뭐 할 거냐는 질문에 글을 쓰니까 외주 원고 같은 거 하고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프리랜서 생활을 좀 해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을 뒤에 덧붙였다. 근데 뭐 누가 일을 줘야지. 내가 돈 받을 정도로 할 줄 아는 건 아니라서. 잘 모르겠네. 뭘 해야 할지. 사실 나는 내 글 좋아한다. 내 시도 좋아한다. 엄마한테 맨날 ‘아들 시 잘 써’라고 말한다. 근데 여기에 돈만 개입되면 ‘그걸 누가 사?’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스스로의 시장성을 되게 낮게 보고 있다. 돈을 번다는 걸 아주 커다랗고 무거운 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새로 이력서를 쓸 때도 ‘내가 이런 것도 할 줄 안다고 해야 되나? 관련이 있긴 한데 해본 적은 없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 지원을 망설인 곳도 있다. 할 수는 있다. 분명히 할 수는 있는데 돈 받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엄마는 이런 내 얘기를 듣고는 ‘돈 받고 할 정도가 아니라 돈을 받으면 그게 돈 받고 할 정도인 거다’라는 식으로 말했다. 맞는 말이다. 돈 받고 할 정도가 되려면 그냥 돈을 받으면 그만이다. 돈 받을 만큼이 아니면 그 사람들이 날 안 찾겠지. 근데 진짜 안 찾으면 어떡하지? 내가 공짜면 먹겠는데 돈 주고는 안 사 먹을 메뉴면 어쩌지? 자기 객관화가 이렇게도 어려운지 몰랐다. 나는 내가 자기 객관화를 잘한다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런 얘기를 종종 들어왔는데 먹고사는 문제가 개입되니 사람이 팍 쪼그라드는 기분이 든다. 대체 뭘로 돈 벌고 살 수 있을까? 다들 어영부영 어떻게든 산다는데 그 어영부영을 뭘로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나 뭐 잘하지?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그냥 하고 싶은 걸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