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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누 Dec 19. 2021

퇴사하고 뭐하지?

집에서 일을 했다

퇴사하고 뭐하지?

집에서 일했다


불안한 마음에 마구잡이로 지원한 수 십 개의 회사 중 몇 군데에서 면접을 보자고 연락이 왔다. 당장 거절하기가 애매해서 일단 알겠다고 한 다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면접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 문자 보냅니다’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아직 뭘 해야 좋을지 생각이 서지 않은 까닭이었다.


그중 한 군데는 거절할 타이밍을 놓쳐 면접을 보게 됐다. 오래 생각한 끝에 당분간은 조금 쉬면서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그게 그 면접 당일 새벽이었다. 당일 아침에 면접에 가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면접까지만 가고 혹여나 채용이 되면 입사는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서울 지리는 가도 가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혹시라도 지각할까 일찌감치 집에서 나왔다. 마구잡이로 넣은 이력서라 무슨 회사 인지도 뭐하는 직무인지도 모르고 일단 면접장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삼십 분 일찍 도착해 근처를 서성이다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로비로 내려온 담당자를 따라 면접장으로 올라갔다. 며칠 전 짧게 자른 머리가 괜히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면접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이렇게 긴장이 안 되는 면접도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붙어도 갈 생각이 없으니 면접을 잘 볼 필요도 없었고 그러니 덩달아 차분할 수 있었다. 

어차피 안 갈 거니까. 당분간은 브런치 연재랑 시 쓰기에만 집중할 생각이니까. 


금방 연락드릴게요.

네,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면접관들과 인사를 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오래간만에 서울까지 나온 김에 서점에 들러 책도 사고 커피도 마시고 공원 산책도 했다. 날씨는 조금 흐렸지만 춥지 않아 걷기 좋은 날이었다. 구두를 신었던 지라 슬슬 발이 아파올 때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면접을 본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부터 출근해줄 수 있냐는 연락이었다. 30분만 생각해보겠다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30분이 채 안되어서 채용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나는 한 달째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이유는 재택근무 딱 하나였다. 재택으로 일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이 회사에 가기로 결정했다.


회사는 일주일에 일정한 정해진 업무 시간만 채우면 되는 자율 근무제로 돌아가지만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다섯 시까지 업무를 본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글 쓰기 위해 쓰는 시간을 좀 더 많이 만들고 싶어서다. 그렇다고 일곱 시부터 일을 하면 너무 피곤할 것 같고. 


다섯 시에 업무를 마치고 나면 얼른 밥을 챙겨 먹고 동네 카페로 나가 작업을 한다. 그동안은 집에서 작업을 하다가 재택근무를 시작한 뒤부터 다시 카페에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집에서 작업을 한다면 업무를 보던 책상에서 그대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업무를 끝내고 나면 그 책상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보는 것도 싫다. 그냥 빨리 거기서 벗어나고 싶다. 


재택근무를 하다 보면 뭐랄까, 이렇게 좋은데 왜 사무실로 출근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되면서 동시에 왜 사무실로 출근을 하는지 이해가 된다. 일단 출퇴근이 없다는 점이 가장 좋다. 사실 이것만으로 다른 모든 단점들이 상쇄될 정도다. 아침에 조금 더 잘 수 있고, 전철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지칠 일도 없다.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전원만 누르면 출근 완료다. 마찬가지로 퇴근 역시 컴퓨터를 끄고 의자에서 일어나면 끝이다. 


물론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 그 순간 집이 집이면서 동시에 사무실이 되기 때문에 그 경계가 불분명해진다는 단점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을 하다가 갑자기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한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는 한 방송에 나와 ‘사람들이 호텔을 찾는 까닭은 그곳에는 집에만 있는 근심과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집안 일거리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설거지는 또 언제 하고 빨래는 또 언제 널고 음식물쓰레기도 꽉 찼던데 지금 그냥 잠깐 나가서 버리고 올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농땡이를 피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회사 일을 하는 건 아니니까. 


일을 하고 있어도, 일을 하지 않고 있어도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는다. 점심을 좀 일찍 먹기 시작해도 된다. 좀 늦게까지 먹어도 된다. 내가 점심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먹었는지 다른 사람들이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곧 내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이렇다 할 결과가 없다면 일을 안 한 것이 된다는 뜻도 된다. 사무실에서 일하면 괜히 물 마시러 일어나고 화장실 왔다 갔다 해도 어쨌든 나름 열심히 일을 한 게 되지만 집에서 일하는 건 그렇지 않다. 그건 그냥 안 한 게 된다. 나는 집에서 일하며 일과 일이 아닌 것의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일과 일이 아닌 것은 명확하게 나뉘는 중이다. 하지만 그래도 출근보다는 훨씬 낫다.


(비록 다시 일을 하지만 ‘퇴사하고 뭐하지’는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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