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슬픔

박경리 <시장과 전장>, 슈만<트로이메라이>, 프로코피예프<교향곡 7번>

by 새로운 고전

'사람들은 헌병이 막는 시가 길을 피하여 논둑길을 뛰고 있었다.

간혹 보따리 인 사람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빈 주먹, 아이를 업었을 정도.

덜미를 잡는 포성에 쫓기면서 잠시 피해 있으면 싸움이 끝나리라고 그들은 모두 믿으며 간다.

말하는 사람도 없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도 없다.

그럴래야 그럴 수도 없는 좁은 논둑길이었으니까.

...

논둑길마다 메운 긴 행렬은 새끼줄을 잡고 칙칙뽀뽀, 칙칙뽀뽀 하며

아이들이 기차놀이 하는 광경과 흡사했다.

슬프고 절박하다기보다 우스꽝스럽고 한낮에 일어난 일이라기보다 한밤중의 꿈 같다.

모두가, 그 무수한 논길 위로 가는 사람은 바늘을 따라가는 실이며,

그리고 일렬종대는 영국 근위병의 행진처럼 일사불란이다.'




오늘은 두 명의 음악가를 함께 소개드리려 합니다.

슬픔을 밀어내기보다 껴안아보기 위해,

연민으로 포장된 무력감을 소리로 다독여보기 위해 나누고 싶은 곡들입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는 우크라이나 출생의 피아니스트입니다.

볼셰비키 혁명과 내전 시절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초창기 시절을 보냈습니다.

혁명으로 집이 몰락하면서, 꿈꿨던 작곡가의 길을 포기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진로를 바꿨다고 합니다.

이후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가는 곳마다 대단한 반응을 불러 일으킵니다.

압도적인 기교와 강렬한 터치, 명쾌하고 직관적인 연주로 객석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우울증으로 힘든 날을 보내기도 하고, 건강 문제로 12년동안 무대에 서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호로비츠는 21세의 나이에 조국을 등지고 망명생활을 시작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nSvUjwvZZs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인보다는 소련인들의 사고방식을 훨씬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지 선과 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곧 선을 찾아가는 것이다. 소련에서 선이란 곧 그들이 만드는 음악이다."




84세의 나이로 60년만에 고국에 돌아와 그의 마지막 연주회에서 연주한 슈만의 '트로이메라이(Traumerei)'입니다.

오늘은 소리 뿐 아니라 영상 속 호로비츠와,

60년만에 돌아온 동포 음악가를 바라보는 관객의 모습도 함께 감상하시길 권합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은 앙코르를 외쳤고

청중들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호로비츠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했습니다.

트로이메라이는 <어린이 정경>중 한 곡으로, 슈만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쓴 곡입니다.

호로비츠가 내는 울림은 오랜 시간 마음에 품은 그리움과 추억의 소리인것만 같습니다.




'그래 이게 역사의 발전이냐?

모세가 이스라엘인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끌고 가던 그것처럼 말이지?

마호메트가 코란을 외우면 불멸 불사한다는 사기술로 아라비안들을 싸움터에 몰아넣었던 것처럼 말이지?

물자가 수도꼭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과 같이 될 때 지구에는 사유재산제가 완전히 없어지고

영원한 낙원이 온다는 사기술로 말이지?

언제 와? 백년 후에 온다는 건가? 이백 년 후에 온다는 건가?'




"어르신네 자제분도 끌려 나갔습니까?"

"생때 같은 자식 놈 둘이나 떼였지요. 자식이래야 그놈 둘이 전분데."

"어느 편에?"
"이쪽에 한 놈, 저쪽에 한 놈, 고루 나눴지."

"......"




두번째로 소개할 음악가는 세르게이 세르게예비치 프로코피예프(Sergei Prokofiev)입니다.

러시아 제국(소련)의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입니다.

음악원 졸업 후 러시아 음악계에 이름을 날리며, 해외 연주 여행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으로 유럽의 음악 활동이 위축되자 프로코피예프는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1944년 교향곡 5번이 대성공을 거두고 음악의 절정기를 갖습니다.

하지만 그 즈음 건강이 악화되고, 종전 이후 문화예술계에 대한 비판 운동으로 인해

소련 음악계에서 그를 질시해 온 당국자와 작곡가들에게 맹렬한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간신히 숙청은 면했지만 많은 작품들이 연주 금지조치를 당했고,

예술적 동지들과 건강을 서서히 잃어갑니다.

검열과 탄압, 악화된 건강에 시달리면서도 교향곡 7번과 6번째 피아노협주곡 등

작품을 쏟아내는 노력을 합니다.

1953년 뇌출혈로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오늘 들려드리는 곡은 그의 인생 마지막 순간들에 심기일전하며 썼던 교향곡 7번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F8oTzXoyts




'노량진역에 이르는 전찻길은 초라하고 더러웠다.

포장한 지 너무 오래되어 길에는 흙먼지가 일고 돌이 여기저기 굴러 있었다.

길 양쪽에 다 쓰러져 가는 집들, 날품팔이 일꾼들이 찾아드는 장국밥집, 녹슨 함석 지붕이

찌그러져 있었고 흙먼지가 쌓인 책방, 조선기와를 올린 비틀어진 이층집,

복덕방 포장이 찢기어 너풀거린다.

겨울이면 강바람이 불어와서 춥고,

여름이면 다 망가진 아스팔트가 눅눅하게 녹아서 더운 바람이 일던 곳,

그 거리에 겨울 여름 없이 낡은 전차가 오가고 도시락을 든 가난한 월급쟁이, 학생들,

노동자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서 있었는데,

언제, 어느때, 서러운 세월의 추억도 잊어버린 노인과 같았던 거리가 다 부서지고

지금은 시체가 되어 누워 있다.

이 부서진 거리를 위해 슬퍼하고 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ㅇㅇ군단 야전병원에는 끊일 줄 모르게 부상병이 실려 들어왔다.

부상병들이 실려 들어오는 만큼 시체는 병원 밖으로 실려 나간다.

운반차 속에서도 죽고, 들것 위에서도 죽고, 야전병원 뜰에서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물 달라고 소리소리 치다가도 죽어갔다.

폭풍에 얼굴 살점이 다 달아난 병사, 삐져나온 눈알이 흐물흐물 움직이며 연방 피가 쏟아지는,

팔과 다리를 잃은 병사,

창자가 터져서 파리가 엉겨붙고 숨을 쉴 때마다 분수처럼 피가 솟구치고,

먼지와 비린내와 땀, 카키빛 군복과 햇빛과 핏빛,

그 세 가지 강렬한 색채에 눌려 아비규환은 오히려 한낮 같은 적막으로 사라지는 것 같다.'




이 작가의 글을 읽고, 지금 이 땅에서 현재진행중인 전쟁이 생각났습니다.

그 적나라한 모습을 핸드폰 화면으로 보다가,

10분 뒤에는 다른 영상을 보고 있는 내 이기와 편리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음악이 나를 허공에서 껴안아준다면 문학은 때로 나를 여과없이 참혹하고 구체적인 현장으로

끌어다 내려놓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글은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전쟁의 상처와 비극, 사회와 인간성을 담아냅니다.

<시장과 전장>을 읽으며 내가 살지 않았던 시절에 들어가 함께 상처받고 위로받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픔을 함께 마주하는 것 만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전쟁이 지나고 평화가 올 때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때 슬픔이 올 거예요.

비참하다는 것은 아마 그때가 돼야 더 뼈저리게 느낄 거예요.

잃었다는 실감이 사람들을 허탈 속에 몰아넣고, 죄를 범한 사람은 그들대로 상처가 덧나서

몹시 아파할 거예요.

지금은.... 그렇죠.

화산이 터져서 한 도시가 매몰된다는 그런 극한 상태보다는 낫다, 낫다 하고

열심히 위로하지 않으면 안 될 시기 아니에요?

애기 엄마도 용길 내세요. 어떤 짓을 하더라도 지금은 사는 일이 징그러운 그런 때가 아니에요.

시체를 옆에 두고 밥을 먹어야 하고, 젊은 여인이 가슴을 드러내고 식량을 이고 와도 부끄러운 때가 아니에요.

영혼이나 순결이 무슨 소용이에요? 모두 동물이 되어버렸는데......'




<시장과 전장>은 6.25전쟁을 겪으며 억척스러운 아내이자 어머니로 변하는 주인공과 그 주변 이야기입니다.

'전장'은 주인공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 속 모두의 환경입니다. 사회적인 환경이 됩니다.




'이튿날도 그 다음 날도 지영은 창문가에 온종일 앉아서 대문만 내다보며 중얼거린다.

문고리가 바람에 흔들리면 지영은 미친 듯 쫓아 나간다.

바람이 불어 문고리는 자꾸만 흔들린다.

"아침에 까치가 와서 짖었어, 까치가 와서 짖으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했지.

꿈에도 그인 돌아와서 아이들을 안던걸. 송상인 씨가 말했으니 석방해주었을지도... 아니야,

기차 꼭대기에 앉았다가 굴러 떨어져서 기절을 하고..... 죽었다고 내버리고.... 정신이 돌아와서....

집에 길을 타고 오느라고......집까지, 허약하게 됐으니... 오래 걸릴 거야.

밤에만 산길을 타고 오느라고..... 아아, 굶어서..... 아니야, 아니야, 그인 죽었어.

형무소 뒤뜰에 시체가 굴러 있을 거야. 가야지. 시체를 찾아야지. 찾아야지."'




지영과 자녀들, 공산주의자에서 이탈한 석산 선생, 이상주의에서 변절하는 덕삼, 가화 등

모든 사람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전장 속에서 삶이 확인되는 거의 유일한 장소이자 숨쉬는 곳은 시장입니다.

소설 속에선 삶과 전장이 번갈아 멀어졌다가 아주 가까워졌다가 합니다.

전쟁이 끝나도 계속되는 일상 속 낯섦과 억압은 그 시절 사회와 삶의 또 다른 상징이기도 합니다.




60년 전에 만들어진 이야기를 읽으며, 엊그제 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뉴스를 떠올립니다.

이름 모를 아주 많은 사람들의 평화를 기도합니다.

기도하면서도 조금 무력하고 조금 허망했습니다.

예술의 일이 개인의 슬픔을 보편적인 것으로 함께 껴안는 일이라면

전쟁과 이념으로 고통받은 이들을 떠올리며

똑같이 고통받았던 세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습니다.

참혹 속에서도 기록으로 위로가 된 것들을 보며 지금을 껴안기 위해서입니다.




'왜 사람에게 슬픈 이야기가 필요한가, 왜 작가는 피 흘려가며 슬픈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

왜 전쟁의 비극은 시처럼 아름다운가,

언어와 글이 생김으로써 사랑과 외로움과 예술이 생겨나고 모든 것이 생겨나고-

그러나 오히려 언어의 장벽에 갇히어 서로 이해되지 못한 채,

때로는 처음 그 세상을 그리워하다가 사람들은 모두 자기 그림자만 밟고 갔으며 또 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언어와 글자는 진실이 아니다.

예술가는 언어의 길을 캐려다 지쳐서 가는 사람, 가까워지려는, 창조하시는 신에게 가까워지려는

염원만 남기고 가버리는 사람이 아닐까.


- 작가 서문 중





*참고

슈만, 트로이메라이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연주)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7번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

박경리, <시장과 전장>, 마로니에북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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