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싯 몸<달과 6펜스>, 스트라빈스키<페트루슈카>
'그의 예술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고 매혹시킨다.
(...)
예술가의 비밀을 캐다 보면 우리는 탐정 소설에 빠지듯 그 일에 빠지고 만다.
그 비밀은 불가해한 우주처럼, 해답을 주지 않는 수수께끼 같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은, 가장 대수롭지 않은 것조차
기이하고, 복잡하고, 고뇌에 가득 찬 개성을 보여 준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의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그 그림들에 전혀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유를 깨닫기도 전에 무작정 좋아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제게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이 그랬고, 이 소설을 읽는 순간들이 그랬습니다.
둘을 겹쳐 보니 난데없이 '용감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용감하다는 건 무모함과는 달리 그 앞에 뭐가 있는지 알면서도
계속 걸어가는 삶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은 원하는 바를 계속 꿈꾸기 위해 용감합니다.
간절히 추구하는 게 있을 때 우리는 언제든 용감해질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어느 날
아내와 자녀, 직장이 있는 안정된 삶에서 훌쩍 떠나 사라집니다.
아내와 그의 주변인들은 외도를 의심하지만,
출가의 이유는 자신의 오랜 열망인 그림을 그리는 일을 실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화가 폴 고갱의 삶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집니다.
소설이 그의 모든 삶을 반영하지는 않지만, 스트릭랜드처럼 폴 고갱도 타히티 섬에 머물며
영감을 얻어 '타이티의 연인들'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품이 인정받은 것은 사후의 일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틀에 박힌 생활의 궤도에 편안하게 정착하는 마흔일곱의 나이에,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난 그려야 해요." 그는 되뇌었다.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뛰어나지 않아도 별로 문제 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
"이런 맹추 같으니라구."
"제가 왜 맹추입니까? 분명한 사실을 말하는 게 맹추란 말인가요?"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https://www.youtube.com/watch?v=esD90diWZds&t=1115s
<페트루슈카>는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발레를 위한 오케스트라 곡입니다.
세 개의 손가락 인형에 생명이 입혀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발레리나를 사랑한 페트루슈카,
발레리나는 그의 고백을 거절하고 페트루슈카는 슬픔에 빠집니다.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인형,
무어인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됩니다.
이 곡의 소리들에서는 어떤 표정이 느껴집니다.
1악장의 활력 넘치는 리듬 속 플룻과 클라리넷의 멜로디,
현악기군의 움직임에선 군중이 가득한 거리에 등장한 마술사와
그가 소개하는 세 캐릭터에 생명이 입혀집니다.
2악장은 좁은 방으로 들어간 페트루슈카의 마음을 그립니다.
바순과 트럼펫의 울림으로 흐느끼고 좌절합니다.
불협화음과 요란한 격정이,
발레리나가 그를 떠나고 절망하는 페트루슈카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3악장은 또 다른 캐릭터, 무어인이 방에 머문 모습을 비춥니다.
낮은 음역의 금관과 피아노의 아다지오로 노래하면, 트럼펫이 답합니다.
페트루슈카가 등장하고 무어인과 싸움을 벌입니다.
발레리나는 기절하고, 무어인은 페트루슈카를 몰아냅니다.
마지막 장은 저녁 무렵의 카니발로 장소를 옮깁니다.
집시 여인과 취한 상인, 마부와 가면을 쓴 무리가 춤을 추며 또 다른 볼거리를 만듭니다.
페트루슈카가 무리로 돌진하고, 무어인은 그를 붙잡아 살해합니다.
탬버린과 목관악기로 묘사되던 장면은 트럼펫을 만나고,
현악기의 피치카토가 결말을 수수께끼로 남기며 끝납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이 해변가 조약돌처럼 그냥 놓여 있다고 생각해요?
무심한 행인이 아무 생각 없이 주워 갈 수 있도록?
아름다움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 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 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오.
그리고 예술가가 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아보는 것도 아냐.
그것을 알아보자면 예술가가 겪은 과정을 똑같이 겪어 보아야 해요.
예술가가 들려주는 건 하나의 멜로디인데,
우리가 그것을 우리 가슴속에서 다시 들을 수 있으려면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페트루슈카>를 들을 때마다 머리속에서 나만의 동화를 새로 짓습니다.
스트라빈스키의 오케스트라엔 장면을 상상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다채로운 음색과 기법으로 곡이 흐르는 동안 상상도 자유롭게 흐릅니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것일까?
그리고 연 수입 일만 파운드에 예쁜 아내를 얻은 저명한 외과의사가
되는 것이 성공인 것일까?'
'삶의 전환은 여러 모양을 취할 수 있고,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성난 격류로 돌을 산산조각 내는 대격변처럼 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방울에
돌이 닳듯이 천천히 올 수도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곡에서 '페트루슈카 코드'라고 불리는 자신만의 음악어법을 만들었습니다.
(C장조와 F#장조 스케일을 동시에 연주하는 것. 강렬한 불협화음)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쇠약해져 작곡을 하지 못했지만,
죽기 전까지도 일어나면 피아노 앞에 앉아 음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정말 전혀 상관하지 않는 사내가 여기 있었다.
그러니 인습 따위에 붙잡혀 있을 사내가 아니었다.
이 사내는 온몸에 기름을 바른 레슬링 선수처럼 도무지 붙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자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세상은 이상한 짓을 하는 이상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것,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 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이곳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언제쯤 원하는 만큼 자유롭고 용감해질 수 있을까요?
소설 속 문장에서 작은 답을 찾습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참고
서머싯 몸, <달과 6펜스>, 민음사, 2000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