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있는 우리를 위해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택수 '찹쌀떡"

by 새로운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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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모릅니다.

그런데 늘 어디서든 마주치고 또 마주칩니다.

우리는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어쩌면 절대 만나지지 않습니다.

글로벌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익숙함을 넘어 구태의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하고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라는 문장에 정말 그럴까? 라는 의문을 달게 되는 요즘,

쏟아지는 의견과 사실과 선동과 거짓과 정보들의 홍수 속에서

매일 매일 무엇을 취하고 버려야 하는지

내가 취하고 버려온 것들이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책임질 수 있는지

일단은 모르겠는 채로 턱 밑에서 찰랑이는 물살을 헤쳐 어딘가로 가고 있는 기분입니다.





결석하지 않고 학교도 잘 다녔다. 법을 어긴 적도 없었다.

하루에 삼분의 일에서 이분의 일을 일터에서 성실히 보냈고 공과금도 기한 내에 냈다.

그럼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았으니까 이만큼이라도 산다고 만족해야 할까.

'스물일곱 살 인생 평가 좀' 같은 제목의 글에 사람들이 쏟아놓는 댓글을 보면

가끔 뭘 잘못한 것 같기도 했다.

더 잘살고 싶었다면 공부를 더 잘했어야 한다고.

솥뚜껑삼겹살도 즉석떡볶이도 먹지 말고 맥주도 마시지 말고 섹스도 하지 말고

닥치고 공부해서 시험에 붙든 돈을 모으든 했어야 한다고.

남들 다 자리잡을 때 어리바리하고 게을렀던 우리가 '빡대가리'라고.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中





어떻게 사는게 잘 사는 일일까,

생존 말고, 나와 내 가족의 안위 말고도 무엇을 추구해야

늘 은근히 끓고 있는 이 신경질적으로 미세한 불안을 잠재울 수 있을까.

미술과 철학, 역사와 음악, 영화, 더 무엇이 우리 공허를 더 채워줄 수 있을까.

제 오랜 궁금증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 소설이 또 하나의 힌트를 주었습니다.

어쩌면 옛날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기도 합니다.

우리 옆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아는 것.

그리고 종종 그들을 둘러보는 것.





송희는 올초 64킬로그램급에서 59킬로그램급으로 체급을 내렸다.

선수가 겹쳐서 누군가 아래 체급으로 나가야 했다.

코치는 송희에게 감량을 지시했다.

졸업하면 실업팀을 소개해줄 테니 걱정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는 감독님이랑 얘기가 다 됐다며. 무슨 뜻인지 송희도 알았다.

메달 하나 딴 적 없는 자기는, 끼워 파는 과자 같은 선수라는 걸.

나는 덤이 아니야.

그때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지는 분명해졌다.

덤이 되거나, 아무것도 못 되거나.

그걸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 '무겁고 높은' 中





김기태 작가의 소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9개의 단편으로 엮인 책입니다.

강박을 앓는 직장인, 미래가 불투명한 운동선수, 사랑을 찾아 <솔로농장> 프로그램에 출연을 신청하고

주야 2조 2교대 공장에서 일하는 청춘과 '핫'해진 해변가의 오래된 여관 주인..

이야기 속의 모든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탓에 책장을 덮으면 '지금 여기'를 반추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2025년 한국'스럽습니다.





"그럼 사람이 하지 누가 해?"

니콜라이는 그건 그렇다며 수긍했다.

공장에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진주는 오래할 일은 아니라며, 지방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미 두 번 떨어졌고 7급에서 9급으로 목표를 바꿨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

고급 스포츠 세단이 육중한 배기음을 내며 지나갔다.

니콜라이는 저기 박힌 전조등을 자기가 만든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中


https://www.youtube.com/watch?v=0OYW4Vl3xTQ





김택수 작곡가의 "찹쌀떡 Chopsaltteok [tʃapsaltɔk]" (2012) 입니다.

김택수 작곡가는 2014-16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상주작곡가 및 2021년 부산시립교향악단

올해의 예술가를 역임했으며 현재 샌디에이고 주립대학교 작곡 및 음악이론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농구경기, 커피, 비누방울 놀이 등 일상생활에 대한 경험과 기억들, 찹쌀떡 노래, 자장자장 우리아가,

국민학교 등 근,현대 한국을 반영하는 작품들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직관적입니다.

체육관에서 농구하며 공 튀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바운스!!',

'짠!!'은 부산의 바닷가에서 직장인들이 술잔 부딪히는 소리를 제목으로 따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찹쌀떡>이라는 곡은 이 소설과 함께 듣고 싶은 곡입니다.

외국인의 발음으로 '찹쌀~~떡' 부르는 소리가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정겹습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찹쌀떡 이라는 단어가 주는 정서와 기억을 더 강하게 부릅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정서를 굉장히 잘 전달하는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바보 같지만 가끔 되풀이하고 싶은 모든 소란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까.

37세의 삶에 신파를 그리워하다니 이것은 미성숙일까.

어쩌면 사랑은 새들보다 가깝고 빵보다 단단하며 조카보다 듬직한 무엇일지도.

- '롤링 선더 러브' 中





내가 두려워하는 걸 다른 사람들도 두려워하고

그래서 슬프거나 긴장하거나 화내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는 어떻게든 앞으로 가고 있고 어디서든 만날 거라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무언가를 그만두는 (좋은 이유로든 나쁜 이유로든)

그래서 또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시작하는

등장 인물들이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점점 고정된 상태라는 건 없다고 느낍니다.

끊임없이 흐르고 움직이고 만나고 헤어지는 게 사는 일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사는 건 지저분하고 변덕스럽고 잘 모르고 한심하고 울적하고 가끔 사랑스럽고,

그냥 그래도 괜찮은 거라고. 멈춰있다고 느껴질 때 조차도

우리는 어딘가로 가고 있고, 어디선가 만날 거니까.





이제 나는 그 사실이 다소 무섭다.

바다를 등지고 아무리 멀리 가도, 반드시 세상 어떤 바다와 다시 마주치게 될 테니까.

그 불편한 예감에 시달릴 때마다 이상하게도 오래전 지하 소극장에서 본 오타쿠들이 떠오른다.

그 기모이한 오타쿠들의 열렬한 구호.

카치코이코죠. 진짜 사랑 고백.

좋아 좋아 정말 좋아 역시 좋아.....

그것도 사랑이라면, 나는 어쩐지 그 근시의 사랑이 조금 그립다.

- '세상 모든 바다' 中









*참조

김기태,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문학동네

김택수, <찹쌀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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