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력을 다해 사랑하고 탐닉하고 집착한 자만이 알 수 있는 상실과 소외
돌아보면 요즈음의 읽기는 전부 북클럽 수업에서 파생된 것이다. ‘초급 한국어’와 ‘대성당’, 그리고 오늘 독서를 마친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까지. 이 책은 ‘오토픽션’이라는 소설의 한 범주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아주 잠깐 등장했다. 하지만 짧은 소개만으로도 책을 읽고 싶어질 만큼 강렬했다. 아마 아래의 추천사를 읽으면 누구라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된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녀는 미친 사랑을 만났다. 머리가 물속에 잠긴 듯한 숨 막히는 열정을. 그녀는 이 사랑을 실험적이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거의 완벽한 그림으로 그려 보인다. ‘단순한 열정’을 읽으면, 사랑의 슬픔이 질병과도 같은 게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처음 감염되면 어릴 때는 가벼운 증세로 나타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위독해지는 병.“
연하의 외국인, 게다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던 남자와의 사랑을 그린 아니 에르노의 이 자전적 소설은 그녀가 50대가 된 이후에야 발표되었다. 그녀는 이혼 후 40대의 나이에 A를 만나게 되었으나, 그가 유부남이건 떠날 사람이건 간에 말 그대로 ’단순한 열정‘으로 그에게 탐닉하게 된다.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미 문단의 호평을 받고 있던 대학 교수로서, 또한 계층과 가족, 사회에 대한 글쓰기를 하고 있던 작가로서 이렇게 가감없는 열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오히려 자전적이고 내면적인 글쓰기를 해왔던 작가이기에 이 역시도 가능한 일인 걸까. 그녀의 소설에서는 사랑과 탐닉, 집착, 성애에 대한 열정 등의 모든 감정이 간결하고 객관적으로 쓰여진다. A와 함께하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환희와 쾌락, 그에 대응하는 기다림의 고통과 불안까지도 말이다.
모두가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나는 책을 읽으며 아니 에르노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에 편파적 감정을 품었지만-우리는 모두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마음 졸인다. ‘그에게 전화가 오면 거지에게 얼마간을 적선해야지’ 점쳐보기도 하고,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의 전화 말고는 다른 미래는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 한번밖에 입지 않을 속옷을 사고,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해 치장하는 일. 대중가요의 가사를 들으며 내 사랑과 같다고 공감하는 일. 이미 40년 전에 작가가 지나온 이 감정은 우리 역시도 잘 아는 것이다.
같은 경험을 했어도, 이 맹렬한 사랑의 감정을 글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 작가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에게는 ’사랑의 열정을 누리는 것이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은 일’이었다. A와 나눈 사랑이 주는 환희와 고통에 대해 쓰지 않을 재간이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토록 깊은 감정의 고락을 겪은 작가가 부럽기도 하면서, 그녀와 같은 단순한 열정-혹은 수난-을 절대 겪고 싶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이 사랑을 통해 분명 무엇인가를 얻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사람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으며, A로 인해 찾아온 단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 사랑은 사치가 되었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