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급 문학 강의, 문지혁의 초록 불빛을 따라서
올 초에 세웠던 몇 가지의 새해 목표 중 하나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꼭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뭐라도 뽑아먹자라는 괘씸한 마음을 시작으로 ‘파트너스 아카데미‘에 접속하게 됐다. 무용 입문자를 위한 바디 맵핑, 원어민 비지니스 영어회화, 퍼스널 컬러, 화과자 테이스팅, 조선호텔 격물공부 등 수없이 많은 강좌들 속에서 내 눈을 잡아끄는 강의가 있었다.
‘세계문학 북클럽: 당신의 밤을 밝히는 이야기’
강좌 제목인 ‘세계문학 북클럽‘보다 그것을 수식하는 ’당신의 밤을 밝히는 이야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었지만 무작정 강의를 신청했다. 첫번째 선정 도서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였다.
꽤 춥던 2월 11일 저녁, 신세계 남산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나를 비롯한 몇명의 사우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문지혁 강사님이 도착하셨고 2시간 가까이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셨다. 강사님은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것 같았고-피츠제럴드와 카버의 문학을 선정한 것부터 유려한 영어 발음까지-강의는 꽤 인상 깊고 재미있었다.
‘당신의 초록 불빛은 무엇인가요’
수업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강의가 끝나고 나니 이 사람이 더 궁금해졌다.
서론이 엄청나게 길었지만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교양 강사로 만나게 된 문지혁 작가님의 네 번째 소설인 ’초급 한국어‘, 그가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며 느꼈던 감정들을 토대로 한 자전적 소설. 어떻게 안 읽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강의에서 작가님이 언급하셨던 ‘오토픽션’ 때문에 더 관심이 가기도 했다.-
아마 나와 비슷한 나이대,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외국 유학이나 워킹 홀리데이, 교환 학생 등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가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살아보고 싶은 로망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꽤 오랜 시간을 거쳐오며 나 역시 자신에 대해 깨달았고, 평생 외국에 살 수 있을 만한 깜냥이나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욕망이 있고, 가끔은 그 안에 있는 나를 상상해보곤 한다.
그래서 ‘초급 한국어’ 속 지혁은 내 기준 굉장히 용감한 사람이다. 누구보다 반듯한 어른이 되었지만 내면에 소설에 대한 욕망이 있는 사람, 그래서 자신의 환경과 가족을 내려놓고 도전을 할 수 있는 사람. 물론 그 과정과 결말이 기대했던 것처럼 쉽거나 빛나진 않지만 말이다. 초급 한국어 강의가 시작되고 끝나는 한 학기 동안, 우리는 지혁의 감정과 역사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마치 같이 성장하는 것처럼.
베른에 있을 때 생각이 많이 났다. 지혁처럼 돈을 벌 필요도, 누군가를 가르쳐야 할 만큼 부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이방인‘이라는 느낌만큼은 생생하게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 그 한 학기 만큼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던 시기가 있었나 싶다. 늘 꿈꾸던 외국의 어느 도시에서 수업도 듣고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낼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나 그 땐 오히려 집 속으로 숨어드는 달팽이처럼 더 위축되고 소심해지기만 했다. -심지어 향수병 때문에 기숙사 침대에서 우는 날도 많았다.- 다시는 그런 기회가 없을텐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소설 속 지혁에게 많은 공감이 됐다. 술도 담배도 안하는 반듯한 사람이지만 내면엔 열망이 넘치는 사람. 소심하지만 똑똑하고 재능도 많아 특별해지고 싶은 사람. 이 소설에서 그는 성공하거나 꿈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실제 세상에서의 문지혁은 등단해 작가가 되었으니 그 때보다 행복할까. 아니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항상 현재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를 다시 만나는 다음주 화요일이 다른 의미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