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흰 것이 껴안고 있는 슬픔, 애틋함, 순수함, 그리고 생명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고 그녀의 작품들이 한참 화두가 되었을 때,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채식주의자’가 취향이 아니었다는 이유를 들어 짐짓 한강 작가의 책을 피해왔다. 열광과도 같았던 시류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 반, 우리나라의 여러 비극을 다룬 그녀의 작품들에 다가설 자신이 없는 마음 반이었다. -나는 같은 이유로 변호인, 1987, 서울의 봄 등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피하곤 했다-그녀의 소설 ’흰‘을 읽고 난 지금, 그러한 마음을 품었던 자신이 창피할 지경이다. 그만큼 ‘흰’은 아름다운 소설이며, 개인적으로는 숭고한 느낌까지 받은 작품이었다.
책의 첫 장은 한강 작가가 만든 ‘흰 것’들의 목록에서 시작된다. 한 줄씩 나열된 그 단어들은 어딘가 압도적이면서도 서글프고, 처연하게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책은 이 단어들을 주춧돌 삼아 지어진다. 갓 태어난 아이를 싸는 흰 ‘강보’, 그 아이가 처음 입는 흰 ‘배내옷’은 태어나 두 시간여만을 살다간 그녀의 언니로 이어진다. 상처와 연결되는 흰 ‘소금’, 생명 또는 죽음으로 상징되는 ‘백목련‘, 그리고 흰 것들로 이어지는 65개의 이야기들이 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읽기엔 아까운 문장들이 많았다. ‘흰’을 읽으며 가장 여러번 받았던 인상은 시같이 쓰인 소설이라는 것이었다. 아주 세밀한 감각까지도 그대로 새겨져 있어 작가가 살았던 그 도시, 그 시간에 함께 잠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강 작가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느끼는 사람이 작가구나, 하고 경탄했다. 시처럼 읽혔던 몇 개의 문단을 소개해본다.
”지금 이 도시는 새벽안개에 잠겨 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졌다. 내가 바라보는 창으로부터 사오 미터 거리에 서 있는 높다란 미루나무 두 그루가 먹색 윤곽을 어렴풋이 드러내고 있을 뿐, 그 밖의 모든 것이 희다. 아니, 저것을 희다고 할 수 있을까? 검게 젖은 어둠을 차가운 입자마다 머금고, 이승과 저승 사이를 소리 없이 일렁이는 저 거대한 물의 움직임을?”
“어느 추워진 아침 입술에서 처음으로 흰 입김이 새어나오고,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 차가운 공기가 캄캄한 허파 속으로 밀려들어와, 체온으로 덥혀져 하얀 날숨이 된다. 우리 생명이 희끗하고 분명한 형상으로 허공에 퍼져나가는 기적.“
“저물기 전에 물기 많은 눈이 쏟아졌다. 보도에 닿자마자 녹는 눈, 소나기처럼 곧 지나갈 눈이었다. 잿빛 구시가지가 삽시간에 희끗하게 지워졌다. 갑자기 비현실적으로 변한 공간 속으로 행인들이 자신의 남루한 시간을 덧대며 걸어들어갔다. 그녀도 멈추지 않고 걸었다. 사라질- 사라지고 있는 - 아름다움을 통과했다. 묵묵히.“
지금 창 밖으로 새벽 안개를 보고 있는 사람이 그녀인지 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겨우내 그 추운 아침들이 지나갈 동안, 입김을 보며 생명의 형상이라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혹은 눈과 아름다움의 시간을 연결해본 적이 있는가. ‘흰’의 문장들은 그저 흘려보냈던, 스쳐지나간 순간들을 포착해 나의 삶 속으로 데려다놓았다. 마침내 그녀가 모아놓은 모든 ‘흰 것‘들을 통과했을 때 우리는 깨닫게 된다. ‘흰’은 단순히 밝고 깨끗하고 순수한 것이 아니라, 차갑고 적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걸.
한강 작가는 ‘흰’이 출간된 2016년에는 작가의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책 자체가 작가의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개정판이 출간되었을 때,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덧붙여 들려주게 되었다. 폴란드의 번역가가 작가를 초대했고, 소설이 등장하는 바로 그 ’흰‘ 도시-바르샤바-에서 ’흰’ 단어를 모아가며 이 이야기를 썼음을. 그녀의 어머니가 꼭 살리고 싶어했던-작가가 그 삶과 그 몸을 대신해 살고 있는-그녀의 언니를 기억하며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강 작가가 주고 싶어했던 모든 ’흰 것‘들을 충만할 정도로 받았고, 그녀가 써낸 모든 흰 순간들에 감사했다. 누군가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이어지길 바라며 정성스레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