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어니, 너 대체 왜 그랬니?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는 예정된 비극과 고통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1987’, ‘동주‘, ’서울의 봄‘, 심지어 ‘변호인’ 같은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이 그렇다. 특히 주인공이 망가지고 고통받고 그것이 새드 엔딩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 때는 더더욱. 그런 의미에서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그 아성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면서도-시작하기 참 어려운 책 중 하나였다. 주현이 처음 책을 선물해주고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주현에게는 밀린 책이 많아 조금 늦게 읽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지만, 사실은 책을 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까닭은 키이라 나이틀리와 제임스 맥어보이, 그리고 이제는 그들만큼 유명해진 시얼샤 로넌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 '어톤먼트' 때문일 것이다. 영화가 개봉했던 2008년에 아무런 스포를 당하지 않고 영화를 봤다면 그들의 리즈 시절도 감상할 수 있어 좋았을 텐데, 작품이 엄청나게 훌륭한 덕분에 그 이후로도 많은 평론과 컨텐츠가 쏟아져 나와 이미 줄거리와 반전에 대해서까지도 다 알고 있던 터다. -소설 ‘속죄’와 영화 ‘어톤먼트’ 둘 중 무엇이라도 보실 분들은 여기서 읽기를 멈춰주시길- 이제서야 사랑을 시작한 젊은 연인에게 닥쳐올 비극을 뻔히 알면서도 그 여정을 함께 해야 하다니, 이처럼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사람들이 왜 이언 매큐언이라는 작가와, 또 ‘속죄’라는 작품에 이렇게 열광하는 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소설은 3부의 이야기와 맨 마지막 ‘1999년 런던‘까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브라이어니와 세실리아, 그리고 로비와의 그 문제적 사건이 모두 일어나는 장이다. 2부는 로비가 전쟁 중에 어떠한 비극과 고통을 마주하는지 보여주고, 3부는 브라이어니가 이러한 상황에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마음으로 병원에서 수습 간호사로 일하는 모습을 그린다. 마지막 장은 70대가 되어 혈관성 치매를 앓기 시작한 브라이어니가 그녀의 언니와 로비를 회상하며 쓴 소설-‘1999년 런던’-을 직접 언급하며 마무리된다.
총 500쪽이 넘는 작품이지만 지루할 틈은 없다. 브라이어니, 세실리아, 로비를 비롯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이 굉장히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첫 장에서 열세 살의 브라이어니가 느끼는 글쓰기에 대한 집착과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질투같은 감정들은 마치 작가가 그 과정을 그대로 거쳐온 듯 실감나게 그려진다. 세실리아와 로비가 서로에게 느끼는 설렘과 격정은 또 어떠한가. 각각의 주인공에게 시점이 넘어갈 때마다 우리는 그들의 눈과 몸으로 직접 사건을 체화할 수 있다.
로비가 1939년에 군에 입대하며 시작되는 2부는 마치 ‘덩케르크‘나 ’1917‘ 같은 전쟁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실제로 로비는 덩케르크 해안까지 가지만- 이언 매큐언은 여기서도 아주 세밀하고 실감나는 묘사로 마치 독자가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3부에서 브라이어니가 수습 간호사로서 일하는 과정, 그리고 그녀가 만나는 여러 병사들-그리고 그들이 입은 부상과 상처- 역시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브라이어니가 파편이 박히거나, 두개골이 깨진 병사를 만날 때마다 우리 역시 자연스럽게 전쟁터의 로비를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은 결국 ‘속죄’에 대한 글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용서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말이다. 진정한 속죄는 쉽지 않기에, 그만큼 용서를 받는 길은 요원하다. 브라이어니가 말하고자 한-그리고 어쩌면 작가가 말하고자 한- 핵심은 마지막 장에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길 원치 않았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소설의 척추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의 척추, 그녀 인생의 척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