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와 함께 춤을]

내 정원의 지렁이를 오동통하게 살찌워 자라게 하려면

by 채부장
2025. 04. 13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요가에 빠져있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한 가지를 굳이 꼽으라면 수많은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고요한 시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것마저도 온전히 조용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악마와 함께 춤을’을 읽으며 가장 와닿았던 구절은 의외로 이 부분이었다.


“요가 강사는 수업 시간에 다른 사람이 뭘 하는지 신경 쓰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그냥 자기 수련에 집중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걸 얻으세요." 도움이 되는 말씀이지만 옆 사람이 꽈배기처럼 몸을 비틀고 한쪽 팔로 균형을 잡는데 정작 나는 손이 발에 닿지도 않는다면, 그런 말은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수강생 중에 간혹 요가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존재에 항상 감사함을 느꼈는데 그들 덕에 보잘것없는 내 실력으로 인한 좌절감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세를 나보다 못 잡는다면 훨씬 좋았다. 땀을 더 흘리고 자세가 더 흔들리면 '나도 그렇게 못하진 않네.'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내가 대부분의 수강생보다 못한다는 걸 알았지만, 적어도 누구보다는 낫다는 것도 알았다. 유연성이 없는 동료 수강생을 향한 내 태도는 경멸이었다. 아주 악의적이지는 않은 가벼운 형태였지만 어쨌거나 경멸이었다.” (p.237)


몸과 마음을 수련하고, 무엇보다 마음 챙김에 효과적이라고 평가받는 요가마저도 사실은 경멸의 감정이 넘실거리는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었다니. 이 부분의 구절이 나에게 콱 박힌 이유는 마치 작가가 마음 속을 꿰뚫어 본 듯 정확한 감정을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 보면 24시간, 365일 중 이러한 ‘나쁜’ 감정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크리스타 K. 토마슨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가 어떻게든 없애려고 하고, 못본 체 하고, 다른 긍정적인 감정으로 대체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이 나쁜 감정들-분노, 질투, 시기, 앙심, 경멸 등-은 사실 삶의 거름과 같다는 것이다. 꽃이 만발한 정원이 계속 아름다우려면 흙 밑의 지렁이가 열심히 일해줘야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이 혐오스럽고 징그럽다고 해서 지렁이를 모조리 없애버리면 꽃마저 시들게 된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간디부터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스피노자, 루소, 세네카, 소로 등에 이르기까지 철학자 12명의 생각을 빌어 나쁜 감정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제시한다. 특히나 많은 부분 지면을 할애하며 등장시키는 이는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인데, 주로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몽테뉴의 철학적 통찰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몽테뉴는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어하지 않는다. 아첨하는 모습, 어색한 모습, 그리고 재미있는 모습과 같은 모든 부분을 그대로 내보인다. 자신을 깎아내리거나 부풀리지 않고 자신을 솔직히 마주한다. 몽테뉴는 이상하고 못난 부분이 자신의 장점을 망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런 부분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려면 이와 같은 너그러운 솔직함이 필요하다. 감정을 짓밟거나 부풀리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나는 당신이 정원의 지렁이를 너그럽고 솔직하게 마주하며, 지렁이가 계속 머물기를 원하는 마음을 갖길 바란다.” (p. 38)


내가 정리한 작가의 생각은 이렇다.

(1) 부정적인 감정은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수단이다.

(2) 나쁜 감정은 좋은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3) 부정적인 감정에 대처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 그냥 느끼는 법을 배워라.


맞다. 지금까지의 나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어떻게든 밀어내려고 노력했으며,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는 ‘시크릿’-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재포장된 번영복음-과 같은 긍정주의에 어느 정도 물들어있기도 했다. 이제 나쁜 감정들도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걸 깨닫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그대로 사라지게끔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돈을 번 누군가에게 시기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졌을 때 ‘그래, 나는 저 사람이 돈을 번 것에 대해 부러워하고 있어’라고 인정하고 더이상 발전시키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 저 사람이 돈 벌때 나는 뭐했지, 왜 저 사람처럼 선택을 하지 못했을까, 나에게 기회가 오긴 올까’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온다. 이 감정을 미워하지 않는 것은 가능할 지 몰라도, 작가가 말하는 대로 그저 느끼다보면 오히려 나쁜 감정이 커지고 걷잡을 수 없이 폭주할 지도 모른다.


혹은 책에서 말하는 몇 가지의 부정적인 감정 외에 다른 카테고리의 감정들은 어떨까. 이를테면 불안과 같은 감정 말이다. 불안의 감정을 그대로 계속 느끼다보면 어느 순간 ’재앙화 사고‘가 일어나고, 공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나는 불안 역시 삶에 대한 애착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만큼 그것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반대편의 마음이 불안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의 주장과는 다르게 불안이라는 감정만큼은 억지스러운 긍정주의로라도 꽉 누르고 싶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작가의 전언을 몸소 실천하기에 그릇이 작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이렇다. 그녀가 책에서 언급한 12명의 철학자, 성인에게서, 그리고 작가의 방법을 통해서도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다양한 대처법을 체득하는 것이다. 어떤 감정은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떤 감정은 억누르려고 노력하고, 어떤 부정적인 태도는 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필요하면 신 포도 수법도 쓸 것이며, 파괴적인 상상도 해보고, 해학적으로 표현해보기도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내 정원의 지렁이들을-참고로 나는 지렁이와 같이 꿈틀거리는 모든 생물을 극도로 무서워한다-오동통하게 살찌워 잘 자라게 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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