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독]

당신 안의 명료한 믿음을 찾으려면

by 채부장
25. 9. 7


<슈독>은 아마 내가 생애 최초로 읽은 자서전일 것이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위인전은 예외로 치자) 누군가의 성공 신화나 그것에서 얻는 삶의 교훈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저항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 선구자의 일생을 담으려면 불가피한, 꽤 많은 지면에 압박을 느껴서였을까. 어떤 이유던간에 이래저래 자서전 독서를 피해온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을 품은 것이 무안할 정도로 <슈독>은 읽는 재미가 큰 책이었다.


나이키의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격으로 쓰여진 <슈독>은 1962년 그가 창업이라는 '미친 생각'을 품은 순간부터 1980년 나이키의 주식 공모가 22달러로 이루어진 때까지를 담고 있다. 1부가 시작되기 전 '동틀 녘'부터 모든 이야기가 끝난 '해 질 녘'까지 숨차게 달리다보면 눈 앞에서 필 나이트의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가 자주 하던 하루 일과 마무리처럼, 10km를 전속력으로 질주한 듯한 기분이다.


처음 책을 펼쳐 단 7페이지밖에 되지 않는 '동틀 녘'을 읽고 나서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필 나이트가 느꼈던 그 추운 새벽의 묘한 열기가 나에게까지 온전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새 공기가 폐로 밀려 들어오며 열의가 샘솟는 것 같았다.


"나의 젊은 심장이 고동치고, 나의 싱싱한 폐는 새의 날개처럼 활짝 펼쳐졌다. 나무에는 새순이 싹트듯이 나는 내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을 보았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깨달았다. 나는 스포츠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운동 선수가 되지 않고도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일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아니면 일을 너무나도 즐겨서 일 자체가 즐거움이 될 순 없을까?"


이 때 필 나이트가 경험한 것은 일종의 계시였나보다.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이 이야기하곤 하는 말씀, 가르침, 혹은 깨달음의 순간.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생애 한 번쯤은 찾아오는 것. 육상 선수가 되고 싶었던 필 나이트는 육체적 한계에 부딪혀 선수의 꿈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스포츠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했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런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었다. 영화 감독은 되지 못할 지라도 영화 배급사에 들어가자 마음 먹었던 순간. 작가가 되진 못할 지라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길을 가보자 결심했던 순간. 필 나이트와 내가 다른 점은 그런 마음을 실행에 옮겼는가, 그저 좋아하는 마음으로만 남겨두었는가의 문제다.


<슈독>을 읽으며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필 나이트는 투사다. 모험가이며 승부사다. 그렇기 때문에 영웅담을 쓸 수 있었다.


"이런 꿈은 오직 한가지 목표만 추구하던 운동선수 출신에게는 가치 있고 흥미로워보였다. 싫든 좋든, 인생은 일종의 게임이다.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 게임을 거부하는 사람은 방관자로 남을 뿐이다. 나는 방관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성장 아니면 죽음'이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나는 깊이 고민하다가 승리winnng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어떤 경우에도 나는 남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내게 패배는 죽음을 의미했다."


나이키의 전신이 일본의 오니쓰카 타이거를 수입하던 블루리본이었다는 사실은 아주 새로웠다. 나이키라는 브랜드가, 그 멋진 회사가 처음부터 뿅하고 멋지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니. 저 멀리 동아시아의 러닝화 300켤레를 미국으로 들여오기 위해 그렇게나 고군분투했다니. 필 나이트가 필연적으로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수많은 요인 중에 단연코 선두를 차지하는 것은 그의 '회복탄력성'일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필 나이트와 그의 회사에 닥친 위기는 일일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늘 현금이 부족했고, 돈을 빌리러 수많은 은행의 문을 두드렸으며, 수없이 많이 거절당했고, 오니쓰카와 결별하며 소송을 해야했고, 나이키로 성공했을 때조차 25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세금의 벽에 부딪혔다. 질릴 만큼 많은 고락을 겪었지만 결코 부도가 나거나 망하지는 않았다. 행운의 여신이 매번 그의 손을 들어준 까닭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투사였기에 절대 좌절만 하진 않았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냈다.


또한 그에겐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다양한 종류의 믿음이었다. 달리기에 대한 믿음,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 언뜻 쉬워보이지만 절대 쉽지 않은 것 아닌가.


"신발을 파는 일은 왜 좋아하는 것일까? 그 일은 단순히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달리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매일 밖에 나가 몇 킬로미터씩 달리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파는 신발이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신발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내 말을 듣고 나의 믿음에 공감했다. 믿음,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했다."


"나는 그들을 전적으로 믿고 어깨너머로 감시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서로 신의를 다질 수 있었다. 나의 경영 스타일은 단계마다 지시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경영 스타일 때문에 자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붙잡지 않고 풀어주었다. 그들이 실수를 해도 내버려두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해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윗 문단을 읽으며 필 나이트의 '달리기'를 '책'으로 치환해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이 매일 책을 단 10페이지씩 만이라도 읽게 된다면 세상은 분명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 더불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 책을 팔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을 소개하고 책을 판매하고 책을 읽게 하고. 그런 활동이 나를 글로벌 부호로 만들어주진 않겠지만 적어도 내 삶에 즐거움과 열정을 불어넣어 줄 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필 나이트와 같은 투사도, 승부사도, 모험가도 아니다. 다만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용기'를 내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적어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한데, 아직 그만큼 단단한 마음을 가지진 못한 것 같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새로운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다보면 조금 더 용기가 생길까.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 마음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꾸준히 장작을 넣어주는 일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으로 인해 달리기와 책을 한 뼘만큼 더 좋아하게 된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다산의 ‘같이산책’에서 <슈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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