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크와 팩트]

오늘날의 유인원으로서 지혜롭게 사는 법

by 채부장
2025. 02. 12


이동진 평론가의 추천서를 왠만하면 빼놓지 않고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장르 소설에만 편중된 독서 리스트를 가지게 될 테니 말이다. 작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컬트’,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과 같은 비문학 도서들은 이동진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아마 절대 읽지 않았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독서해야 하고, 문장을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해 중간에 한숨을 내쉬며 책을 덮었던 적도 여러번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선택한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의 ‘페이크와 팩트’ 역시 500페이지를 넘어가는 분량의 사회학 책이다. 일주일이 넘도록 여러 챕터에 멈춰가며 책을 읽었는데, 그럼에도 독서의 경험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까닭은 이 책이 담고 있는 방대한 실제 사례와, 이 예시들 중 대부분은 지금 우리가 직접 목도하고 경험하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페이크와 팩트’는 합리적인 인류가 어째서 비논리적인 믿음에 붙들려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지 세세하게 밝히고 있다.


대표적으로 다루는 것은 건강에 대한 문제다. 백신에 대한 루머와 부작용에 대한 공포, 비타민C를 만병통치약으로 추대하는 의사, 대체의학, 자연치유와 동종요법에 이르기까지. 무병장수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대단히도 강력해서 오히려 건강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키우기도 한다. 그라임스는 한국의 예시를 들진 않았지만 나는 이 챕터를 읽으며 몇 가지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러분들도 아마 ‘안아키’라는 카페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말 그대로 안전하고 건강하게 아기 키우기, 약을 쓰지 않고 아기를 키우는 어머니들의 커뮤니티다. 한참 카페가 활성화될 때는 무려 6만명의 회원을 거느렸고, 같은 이름의 책도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현대 의학을 믿지 않고 아이들의 자연 치유를 위해 ‘몸공부’를 했다. 나아가 위험한 민간요법-대표적으로 숯가루 먹이기-들을 직접 행하는 맘닥터들이 등장했다. 그들의 주장은 ‘페이크와 팩트’에서 다루고 있는 백신 반대론자들과 꽤 유사해 보인다.


1998년 영국 위장병 전문의 웨이크필드는 홍역 백신과 자폐 아동들의 자폐성 장염이 연관되었을 수도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다. 당연하게도 주류 과학과 대중 담론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으나, 백신 반대론자들이나 과학 전문 지식이 없는 기자들은 자극적인 정보를 떠들어댔다. 왜 우리는 이토록 실체 없는 위험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과 두려움을 가지는가. 이 책에서는 ‘쉽게 얻은 정보나 최근 정보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이 현상’을 ‘가용성 휴리스틱’으로 설명하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겪은 모두가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 적어도 한번씩은 이야기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백신‘의 연관 검색어로 아직도 ’백신 부작용‘이 가장 먼저 뜨는 것 역시 혹시라도 일어날 비극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사망보다 무서운 백신의 부작용 말이다.


이러한 음모론, 오해, 유언비어, 거짓들은 의외로 큰 힘을 가진다. 게다가 잘 박멸되지도 않는다. 세계의 모든 인류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고, 수없이 많은 정보를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지금이 더욱 그렇다. 나 역시 인터넷 상에서 전지전능한 비타민C의 위력을 보았었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무시무시한 방사능에도 압도되어 있었다. 실제로 방사선 생물학적 결과는 소소했고, 방사능 피폭과 연관된 사망 건수는 한 건 뿐이었다는데 말이다. -사실은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왜 몇십년 몇백년이 지나도록 일본에서 온 물고기들이 내 몸에 방사능을 축적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그것은 분명 내 안에도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유인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가짜 뉴스를 분별하기 어려워지고 여론에 쉽게 선동되며 분노하게 된다. 이러한 현실에서 저자는 좀 더 비판적으로, 또한 과학자처럼 사고하기를 요한다. 감정보다는 증거를 따라가고, 항상 자신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조금이나마 파악했다면, 좀 더 현명해지기 위해 노력해야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매우 정교하지만 우리는 결국 감정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비합리적인 유인원이며, 의심스러운 결론에 깊이 집착하고, 생각하지 않고 반응한다. 우리는 상상하기도 힘든 파멸의 도구를 만들어서 격변의 한가운데에 내던졌다. 위대한 생물학자 에드워드 0. 윌슨이 주장했듯이, 인류의 진짜 문제는 우리가 "원시인의 감정과 중세의 제도, 신에 필적하는 기술”을 가졌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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