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완전히 아는 것은, 우주를 완전히 아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고 얼마 안 되어 그의 최근작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를 찾게 되었다. 사실 작품의 원제는 'ELIZABETH FINCH'로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한 여교수의 이름이다. -한국어 제목은 일부러 연작같은 느낌으로 지은 것일까- 반스의 대표작만을 읽은 나같은 사람에게 이번 신간은 또 다른 의미로 예상을 깨뜨리는 작품이었다.
소설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주인공인 닐이 엘리자베스 핀치의 수업 ‘문화와 문명’을 들으며 그녀에게 매료되고, 같은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교류하고 다투는 등의 과정을 다룬다. 닐이 엘리자베스 핀치에 대해 매혹되는 만큼 독자들 역시 이 신비스러운 여교수에게 빠져들게 된다. 세상사로부터 초연해보이는 그녀, 절대 평정을 잃지 않는 그녀, 뛰어난 지성의 그녀, 엘리자베스 핀치는 닐의 묘사 속에서 더욱 환상적이고 경이로운 존재로 자리잡는다.
소설의 2장은 특이하게도 로마 시대의 마지막 황제, ‘배교자’ 율리아누스에 대한 닐의 에세이로 이어진다. 닐은 엘리자베스 핀치에게 제출하지 못한 숙제를 뒤늦게나마 만회하고자 이 에세이를 쓴다. 서양사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탓에 많은 배경지식과 이해가 필요한 나에게는 굉장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챕터였다. 하지만 우리가 집중해야하는 것은 율리아누스라는 한 인물에 대한 역사의 해석이다. 그는 ‘기독교 세계 역사의 큰 악당’이며 ‘이교도 광신자’, ’위선자‘인 동시에 ‘관용의 모범’이었으며 ‘가장 훌륭한 통치자’, ‘냉정하고 순결하고 공정하고 용감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고 평가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대한 역사서를 토대로 율리아누스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있는 닐조차도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율리아누스 사후 약 1,700년 동안 수많은 역사가와 시인, 종교인, 학자들이 그에 대한 해석을 내리려 했으나-나무위키만 봐도 율리아누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찾을 수 있다-우리는 끝끝내 율리아누스가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제 3장으로 넘어와 율리아누스 에세이를 마친 닐을 만나보자. 그는 다시 엘리자베스 핀치를 기념한다. 율리아누스와 엘리자베스 핀치는 3장에 와서야 병렬로 놓이며, 닐은 그녀의 역사를 훑기 시작한다. 엘리자베스 핀치의 어린 시절, 그녀의 사랑, 그녀가 겪은 사회적 모욕과 망신, 닐이 아닌 다른 이들과 그녀가 만들어 온 기억까지도. 닐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엘리자베스 핀치를 ‘어떤 인물’로 규정하고자 했지만 사실 그가 아는 그녀는 일부분일 뿐이었다. 닐은 아주 오랫동안 엘리자베스 핀치를 ‘내가 평생 만난 가장 어른스러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조차 그녀에 대한 적확한 평가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엘리자베스 핀치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은 율리아누스 황제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깨달았으니, 멈출 때가 되었다.“
집요한 개인이든, 수많은 시간을 거친 다수의 의견이든, 우리는 결국 한 사람조차 제대로 파악해낼 수 없다. 우주를 전부 알기 어렵듯, 누군가를 전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나조차 나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지 않는가.
추천사를 쓴 소설가 김연수의 말마따나 줄리언 반스의 소설을 한 번만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다시 읽기와는 다른 의미로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역시 다시 읽어야만 작품의 진정한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