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그릇된 방향으로서의 ‘품위’는 정당하게 기능할 수 있는가

by 채부장
2025. 01. 18

주현이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소개해준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 쉽게 잘 읽히고,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많은 여운이 남는 책이다. 책 날개에 적힌 저자의 소개글을 읽으면서부터, 일본 태생의 작가가 어떻게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는 ’남아 있는 나날‘로 1989년에 부커상을 수상했고 나아가 2017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소설은 1956년 영국 중부 지방에 위치한 고급 저택 달링턴 홀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스티븐스는 젊은 시절부터 노년이 된 지금까지 달링턴 홀에서 근무한 집사이다. 그가 오랫동안 충심으로 모셔왔던 달링턴 경은 돌아가시고, 미국의 패러데이 씨가 새 주인으로 오신 지 몇 년이 지난 시점이다. 스티븐스는 오래 전 함께 일한 하녀 켄턴 양의 편지를 받고 그녀가 현재 거주하는 콘월주로 며칠 간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스티븐스가 여행 중 거쳐가는 여러 도시들의 소소한 사건들과 그가 회상하는 지난 시절의 일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그의 여정을 따라가는 과정이 마치 ‘마술에 가까운 솜씨’-뉴욕타임즈에서 이시구로의 글을 이렇게 평가했다-로 묘사된다. 우리는 스티븐스의 회상을 통해 그가 가진 ’집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품위와 긍지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가 모시는 달링턴 경에 대한 충성심과 존경심이 또한 얼마나 대단한지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작가는 집사로서의 품위에 대한 스티븐스의 고뇌와 해석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작품의 종반부로 향해갈수록 우리는 그 품위와 충직함이 과연 옳은 방향으로 기능했는지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된다. 그가 가진 맹목적이고 외곬수적인 충심이 오히려 주변의 맥락을 파악하지 말라고 외쳤을 것이다. 알려고 들지도 말고, 끼어들지도 말고, 조언조차 하지 않는 게 그의 직업 윤리였을지 모른다.


작품 해설에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언급하고 있다. 성실하게 일상을 반복함으로써 악을 돕고 악에 이용당하는 범인들의 삶, 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 말이다. 유사한 의미로서 얼마 전 본 ‘존 오브 인터레스트’가 떠올랐다. 우리의 스티븐스를 나치 장교에까지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그는 이 모든 점에도 연민이 가는 인물이기 때문에-스티븐스 역시 자의든 타의든 간에 주인인 달링턴 경과 마찬가지로 그 오랜 시간 동안 나치를 지지하는 일에 동조했기 때문이다.


현재로 돌아와, 우리 역시 직업인이기 때문에 ‘직업인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해 고찰해 봐야 한다. 스티븐스는 집사라는 직업에 대한 품위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헌신했으며 그 과정에서 기꺼이 본인의 개인적 삶과 사랑까지도 포기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비록 미약하고 그릇되었을 지라도 본인 직업에 대한 긍지일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균형을 가져가야 하는가. 위대한 작품을 읽고 우스운 이야기지만,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지금 구매하세요 : 쇼핑의 음모’를 보고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옷을 팔고자 노력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전 19화[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