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때, 당신이 향할 곳

by 채부장

2024. 1. 6 그리고 2025. 9. 29


원체 욕심이 많아 같은 영화를 두 번 보거나 같은 책을 두 번 읽지는 못한다. 세상에 좋은 책과 영화가 이렇게나 많은데 그것에 비해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역시 트레바리가 아니었다면 두 번 읽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재독을 하고 나니 왜 좋은 책은 여러 번 읽는지 알 것도 같았다. 분명 같은 책인데 새롭게 와닿는 부분이 생겼고, 이전에 좋았던 부분은 또 다른 깊이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작년, 그러니까 2024년의 첫 시작을 함께 한 책이었다. 이제는 책을 읽으며 필사라도 해보자고 결심한 때여서 굉장히 많은 부분을 받아적었더랬다. 책을 모두 읽은 후 그 당시의 노트를 펴봤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맨 앞 장에 받아적었던 이 구절이 그 때도, 지금도 가장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곧 말을 못하게 될 거야. 하지만 행복해. 여러 가지로 운이 좋았지. 가족, 크리스타를 잘 돌봐줘. 수학을 끝내지 못한 건 후회가 돼. 포기하지는 않을 거야. 넌 걱정 안 해. 훌륭한 녀석. 사랑해. 나도 괜찮은 사람으로 산 거 같아. ... 행복한 추억이 많아. 너랑 이야기한 것도 좋은 추억이야.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다 끝내지 않은 비디오를 누군가가 돌려줘버린 느낌이야."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형, 톰이 화자인 브링리에게 한 말이다. 톰이 죽고 나서 브링리가 왜 정물처럼, 식물처럼, 그저 고요하게 서 있고 싶어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쯤은-혹은 여러 번일 수도 있지만- '잠깐 멈춤' 버튼을 누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도망가고 싶고, 숨어버리고 싶고,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을 때. 혹은 이 시간과 세월이 너무나 막막해서 그저 흘려보내고 싶은 때. 그것은 너무나 큰 고통을 마주해서일 수도 있고 지금까지의 인생을 전부 바꿔놓는 어떤 경험을 해서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브링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으로 향한다.


예술은 셀 수 없이 수많은 방법으로 인생을 비춘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순간을 그려낸 작품도 많지만 고통과 비극, 슬픔을 그려낸 예술 작품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브링리가 수많은 예수의 그림들을 보며 깨달았듯 '우리는 말문을 막히게 하는 엄청난 고통의 무게를 느끼기 위해 그림을 본다'. 책을 읽다보면 예술과 삶이 어떻게 교차하는지-마치 퀼트를 제작하듯- 면밀하게 느낄 수 있다. 관람객이 들어오기 전의 고요한 미술관과 톰의 병실은 어떤가. 시간이 멈춘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느껴지는 영감, 유사한 기억이 재생되는 순간이다. 예술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톰과 브링리, 어머니가 함께 했던 그 새벽녘의 병실은 어쩌면 피에타를 연상케 하는 '옛 거장들이 그렸던 그림' 바로 그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예술 작품의 상당수는 종교와 맞닿아 있었다. 종교는 우리 인간만의 전유물이자 인간 역사 그 자체가 아닌가. 책 속의 많은 예술품들이 그 자체로 다양한 종교를 표현하고 있다. 브링리가 메트에서 가장 멋진 조각상이라고 여긴 <은키시 주술상> 역시 그 중 하나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작품임에도 '사람의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신성한 존재'. 예술은 이런 힘을 가진다. 우리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믿음을 주기도, 삶을 지배하기도 한다.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나 이집트의 대 피라미드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압도감은 아주 오래 전의 인류나 지금의 우리나 별반 차이 없을 것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종종 성스럽고 장엄한 기분이 드는 것 역시 예술 작품이 가진 모종의 숭고한 힘 때문 아닐까.


이번에 책을 다시 읽으며 새롭게 와닿았던 건 <뉴요커> 매거진에서 일했던 당시 브링리의 모습이었다. 그의 사무실 데스크에서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였고 마이클 셰이본, 스티븐 킹 같은 거물급 인사를 인터뷰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밝은 조명들에 눈이 한참 멀어' 있을 만한 날들이다.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지금의 브링리는 그 때의 자신이 '조명발'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동료들과 나는 일주일, 40시간 내내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사회의 사무실 관습에 따라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관습에 따라 책상에서 책을 펼 수도, 머리를 식히는 산책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모두가 그러듯 인터넷을 뒤적이고 책을 읽지 않는 법을 배우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점점 진흙탕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래지 않아 나는 이전까지 한 번도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을러진 것이다.”


이 부분이 특히 가슴에 꽂힌 것은 지금의 내 생활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아서였다. (물론 스티븐 킹 부분은 제외해야 하겠지만) 나 역시 현대사회의 사무실 관습에 따라 주 35시간 이상은 회사에 집중해야 하니 말이다. 상상을 해본다. 브링리가 톰의 병을 알게 된 순간처럼, 마치 교통사고처럼 나를 덮치는 일이 생긴다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란 무엇일까. 우습게도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이 떠오른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랑과 소속의 욕구, 존중 또는 인정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말이다. 내 삶은 결국 이 5단계의 욕구들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듯하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고자 매번 안간힘을 써가며.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때 브링리는 메트를 선택했고 그 세계에서 7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톰의 죽음을 극복하고 가정을 이루었으며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 이런 일을 마주했을 때 내가 숨어들 곳은 어디일까. 꽉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해도 괜찮은, 나를 온전히 감싸줄 경이로운 세계.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저장해두고 언제라도 꺼내보고 싶은 곳, 그 곳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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