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간결한 문장 속에 담긴 일상의 비극
파트너스 아카데미 북클럽에서 다룬 두 번째 책은 ‘작가들의 작가’로 유명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이다. 수업에서 집중적으로 다뤘던 단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A small, good thing)’을 포함해 총 12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카버는 생애의 대부분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고, 삶과 일상에 치여 장편 소설을 쓰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단편은 순간적으로 집중하면 완성할 수 있고, 무엇보다 환금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어 카버는 평생 단편만을 썼다.
보편적으로 원고지 200매 이하의 짧은 이야기를 단편이라고 한다. 영어로 단편은 Short story이고, 장편 소설을 Novel이다. 왜 단편은 소설로 정의해주지도 않는 것인가. ‘소설’은 말 그대로 작은 이야기인데. 사실 단편은 장편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워 마치 압축 파일과 같다. 생략된 이야기나 배경 설명이 많기 때문에 상상하고 유추해가며 읽어야한다. 그래서 10년, 20년 뒤 다시 읽었을 때 완전히 다른 경험을 선사할 수도 있다.
카버의 글은 감상적인 면이 없을 뿐더러 문체가 딱딱하고 건조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하드보일드, 미니멀리즘, 그리고 (더티) 리얼리즘으로 규정된다. 카버가 생애 대부분을 서민, 하층민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의 소설 역시 주로 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난, 병, 알콜 중독,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버림 받는 등 일상에 비극이 만연하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이 슬픔과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예술이다. 마치 카버의 인생처럼. 행복한 사람은 시계와 책을 보지 않고, 오직 병든 사람만이 책을 읽는다.
열두 편의 소설이 대체로 다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수업에서 다루었던 A small, good thing이었다. 처음에 혼자 읽었을 때는 따뜻하게 위로받는 느낌에서 그쳤다면, 해석을 듣고 난 후에는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만큼 깊은 독서 경험에 이를 수 있었다. 다들 나와 같은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소설만큼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미 알면 재미가 없으니 대략적인 줄거리도 생략한다.
이 소설에는 총 3가지의 빵이 나오는데 아들 스코티를 상징하는 초콜릿 케이크, 빵집 주인이 내어놓은 시나몬 롤, 그리고 마지막 문단에 등장하는 검은 빵이다. 여기서의 검은 빵은 Dark loaf(검은 덩어리)로 표현되며 마치 인생에 대한 완벽한 메타포처럼 느껴진다. 엄청난 고통과 비극을 겪은 주인공 부부는 이 빵을 먹는 과정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존재로 변화해간다. 사람을 다른 존재로 변화시키는 것은 고통과 슬픔이다. 어느 순간 인생은 더이상 초콜릿 케이크가 아니며, 삶은 우리들에게 꽤 공평하게 ’깡패짓‘을 한다. 그렇다면 불행이 찾아온 이후, 어떻게 삶을 꾸려가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차례다.
이 책을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강사님이 마지막 문단의 한 문장을 설명할 때였다. 책을 번역한 김연수 작가는 이 문장을 “퍽퍽한 빵이지만, 맛깔나다오.”로 번역했지만 사실은 “It's a heavy bread, but rich." 라는 문장이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큼 우리 인생을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카버는 정말 이 모든 의미를 예측하고 이 문장에 담아서 써낸 것일까. 여기서 빵을 인생으로 바꾸어보면 아주 경이로운 문장이 된다.
“It's a heavy life, but 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