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개츠비로서 존재했던 시간은 언제인가요
지난 2월, 문지혁 작가님의 리딩 클래스 첫 번째 책이었던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이제서야 완독했다. 강의를 들을 당시에는 책을 다 읽지 못한 상태라 충분히 내용을 흡수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초록 불빛은 무엇입니까’라는 마지막 물음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터다.
전세계를 통틀어 <위대한 개츠비>를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위대한 미국 소설’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현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지는 이미 오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번역하며 어느 장을 펼쳐 읽어도 늘 감동적이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사실이고, ‘개츠비스크’라는 신조어 뿐 아니라 개츠비를 따서 만든 일본의 남성 화장품 브랜드 ‘가츠비’, 우리나라의 ‘승츠비’-이건 아주 부정적인 예시지만-와 같은 전세계적 영향력을 쉬이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더 개인적인 감상을 담기 어려운 소설이기도 하다. 나무위키에만 쳐봐도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정보가 스크롤을 끝없이 내려야 할 정도로 많고, 민음사에서 펴낸 책의 뒷편에는 번역하신 김욱동 교수님의 자세하고 친절한 완결판 해설이 실려있다. (해설은 소설 완독 후 꼭 읽어보시길)
그럼에도 아직 나처럼 <위대한 개츠비>를 읽지 않았던 독자들이 계시다면 이 소설은 그저 재미만을 위해 읽더라도 충분히 그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세계 문학, 현대 고전이라고 하면 어쩐지 어렵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다루고 있을 거라는 인상이 강한데, <위대한 개츠비>은 외려 쉽게 읽히는 소설이며 요즈음의 K-드라마 속 막장 스토리와 궤를 같이 하는 부분도 있다. 개츠비의 미스테리한 과거와 데이지를 마주하게 되는 과정,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벌어지는 사건과 사고, 씁쓸한 결말까지도 그렇다.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책의 중반부터 마지막까지는 아마 내달리듯 독서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소설은 1922년 세계 1차 대전 직후 미국의 ‘재즈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의 욕망과 행동은 2025년 현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자인 닉 캐러웨이도 일견 그러한 부분이 있지만, 나머지 중심 인물 넷-개츠비, 데이지, 톰 뷰캐넌, 조던-이 보여주는 물질과 애정에 대한 욕망, 도덕성의 타락은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는 계급 간 갈등은 어떠한가. 본래부터 부유한 계층으로 살아온 톰과 데이지, 불법적인 일을 통해 급속도로 부자가 된 개츠비, 가난한 계층으로 부자들에게 빌붙어 살아가는 것처럼 표현되는 윌슨과 머틀까지. 이들이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개츠비의 말로는 또 어떠한가. 매일밤 성대한 파티가 열릴 때에는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그 수많은 인파가 그의 마지막 순간엔 모두 사라지고 없던 것. 고사성어로 ‘염량세태’,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작 정승이 죽으면 썰렁하다’는 옛 속담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100년이 넘은 지금도 피츠제럴드의 소설에 공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일테다. 더불어 작가 자체가 평생 부와 명예를 좇아 살아왔기에-그는 가난하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파혼당한 적이 있다-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낸 <위대한 개츠비>가 피츠제럴드의 자전적인 소설로 읽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주인공 데이지를 작가의 아내, 젤다와 겹쳐볼 수밖에 없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다. 그러나 피츠제럴드, 그의 아내 젤다, 그리고 개츠비와 데이지에게서 우리 자신은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마냥 손가락질 할 수만은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개츠비는 데이지라는 이상을 좇아 맹목적으로 달려왔고 마침내 그녀를 위해 희생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외려 더 불가능해보이는 것이다.
문지혁 작가님이 강의 때 주제로 잡고 말씀하셨던 ‘초록 불빛(Green Light)'이 개츠비에게는 환상 속에 존재하던 데이지다. 개츠비가 매일 밤 선착장으로 나가 지켜보던 데이지 저택의 불빛. 밤의 하늘과 강을 초록으로 밝히며, 손을 뻗으면 마치 닿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코 쉽게 가질 수는 없는 이상. 작가님에게는 소설을 쓰는 일이 초록 불빛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누구에게나 개츠비로서 존재하는 시간이 있고, 누구에게나 염원하는 초록 불빛이 있다. 그것이 진정 나를 구원할 지 혹은 파멸시킬 지 모르는 일이지만, 나만의 초록 불빛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삶의 의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