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악]

우리는 우리의 피조물에 책임이 있는가?

by 채부장


25. 9. 23


어렸을 때는 과학을 꽤 좋아했던 것 같다. 기억이 미화됐을 성 싶어 확신은 없지만 말이다. 여기서 '어렸을 때'란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의, 아주 짧은 기간을 뜻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집에 있던 '우주는 왜', '지구는 왜', '우리 몸은 왜', '컴퓨터는 왜' 같은 과학 교양 만화책 덕분이었다. 내용 자체가 뇌리에 깊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으며 흥미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잠시, 중학생이 되고 만난 물상 선생님 때문에-인생에 그토록 무서워했던 수업 시간이 있었는지-물리를 포기하고 싶어졌다. 고등학생 때는 중력의 크기 공식을 이해해보려다 지구 과학마저 포기했다. 과학은 그렇게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30대 중반이 된 지금, 종종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가 출연한 유튜브 컨텐츠를 본다. 아무래도 최애 프로그램은 이동진(나의 최애) 평론가와 궤도, 안현모가 진행하는 '라플위클리'일 수 밖에 없지만 침착맨이나 유병재 유튜브에 게스트로 나온 것 역시 챙겨보는 편이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이론적인 과학은 어렵다. 하지만 어린 시절 교양 만화책을 읽을 때처럼 궤도의 이야기를 통해 듣는 과학은 재미있다.


그런 의미에서 네덜란드의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가 써낸 <매니악>은 아주 재미있는 책이다. 나처럼 과학을 포기했던 사람조차 이야기 안으로 흠뻑 흡수되어 버릴만큼. 게다가 대한민국의 독자라면 속은 셈 치고 한번쯤 이 책을 펴보아야 할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3부의 제목이 바로 '세돌 또는 인공지능의 망상'이기 때문이다. 맞다. 3부의 주인공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바로 그 이세돌이다.


<매니악>은 논픽션처럼 느껴지는 소설이다. 소설 속 과학자들의 삶을 좇다보면 이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작가의 상상 속에서 재구성된 사건인지 혼란스러운 지점이 온다. 각각의 장이 끝나고 나면 실려 있는 과학자들의 사진. 그것을 맞닥뜨리는 순간 이 이야기들은 진실이 된다. 1부 사진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 그가 쏘아죽인 아들 바실리, 그리고 파울의 친구인 아인슈타인이다. 파울은 1927년 솔베이 회의에서 양자 혁명을 마주했고 이후 일어난 물리학계의 발전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과학자, 수학자들은 미쳐버릴 가능성이 보통의 사람들보다 높은 걸까?


그래서 등장하는 2부의 주인공은 그 유명한 존 폰 노이만이다.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똑똑했던 사람, 최고의 천재, 게임 이론과 컴퓨터의 아버지,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한없이 부족했던 사람. 책은 상당히 많은 지면을 그의 천재성을 묘사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세상에는 두 유형의 사람이 존재한다. 연치 폰 노이만과 우리 나머지', '대개 수학자들은 자신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을 증명한다. 하지만 폰 노이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증명한다'와 같은 표현 말이다. 그는 직조기에서 컴퓨터의 작동 방식을 알아내고, 수학으로 인류의 미래를 형성하고자 했으며, 그 과정에서 게임 이론을 만들어냈다.

책은 폰 노이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입을 빌려 그의 인생을 서술한다. 어머니부터 선생님, 전처와 딸, 연인, 친구, 동료까지. 내내 들었던 생각은 폰 노이만과 같은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인지, 타고 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엄청난 두뇌는 마치 세계적인 육상 선수의 다리와 같지 않은가.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육상 선수는 인류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데 폰 노이만과 같은 과학자, 수학자, 물리학자는 그럴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고난 천재인 폰 노이만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핵 딜레마에 그가 내놓은 대답은 그의 최고와 최악의 모습을 완벽히 반영하고 있었다. 빈틈 없이 논리적이면서 완벽히 반직관적이고, 사이코패스의 경계에 걸쳐 있을 만큼 철저히 이성적인 모습. 많이들 모르는 사실이지만, 남편은 인생을 순전히 게임으로 보았다.'


'폰 노이만의 발명품이 아니었다면 열핵무기는 사실상 만들어질 수 없었다. 컴퓨터의 운명은 애초부터 열핵무기와 단단히 얽혀있었다. ...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게나 소름이 끼친다. 인간 발명품 중 가장 독창적인 물건과 가장 파괴적인 물건이 정확히 동시에 탄생하다니.'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손꼽히는 폰 노이만은 세상에 이처럼 많은 업적을 남기는 동시에 우리에게 음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신과 인간, 인간과 기계. '우리는 우리의 피조물에 책임이 있는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프로메테우스'가 떠오르는 시점이다. 인간과 안드로이드,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 챗gpt를 비롯한 인공 지능이 이미 디지털 생명으로 여겨지고 있는 지금, 이 곳에서도 폰 노이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제 3부의 이세돌이 등장할 차례다. 인류가 생각해낸 것 가운데 가장 복잡하고도 심오한 바둑이라는 게임, 그 게임의 최정상에 서 있던 사람. 그리고 아마 인류 역사상 마지막으로 인공 지능에게 승리한 사람. 세돌을 끝으로 더이상 인간의 승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한 시대의 폐막을 의미한다. 인공 지능보다 인간이 뛰어나다는 믿음이 존재하던 세계관은 붕괴됐다. 우리가 가졌던 이성에 대한 믿음, 이성을 향한 집착이 어느새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었다. 막을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바라만 볼 수도 없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매니악>을 읽고 난 뒤 우연히 TV에서 아이폰 프로 17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저 얇고 자그마한, 손 안에 들어가는 핸드폰 안에 인간 뇌보다 더 많은 것들을 넣고 다닌다니. 불과 20년 전만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 말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챗gpt에 여러 가지를 물어봤다. 처음 만났을 땐 낯설었지만 어느새 일상에 없으면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더럭 겁이 난다. 앞으로 10년 뒤, 20년 뒤에 어떻게 살고 있을지 앞이 깜깜한 걸 보면 AI 우울증이 괜히 나오는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인공 지능에 대한 나의 결론은 항상 같다. 결국 인간은 인간다움을 찾아갈 거라는 거다.


'평범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거짓말하고, 속이고, 기만하고, 묵인하고, 음모를 꾸미지만, 동시에 협력하고,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순전히 충동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다들 자신의 감을 따른다. 직감에 의지하다가 경솔한 실수를 저지른다. 인생은 게임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삶의 풍성함과 복잡함은 아무리 아름답고 완벽하게 균형잡힌 방정식이라 해도 포착할 수 없다.'


부족한 우리 인간들이 인공 지능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자구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관심, 체계적인 교육, 그리고 국가와 세계 차원의 관리까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 과학자들이 인류의 파괴보다 발전에 힘을 쓸 수 있도록 말이다. 인공 지능보다 더 중요한 인류의 문제들이 아직 많지 않은가. 우리의 문제는 우리 자신의 손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매니악]에, 폰 노이만에 푹 빠졌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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