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일곱 명의 여성 작가들이 그려내는 무지개빛 세계

by 채부장

2025. 8. 9



저번주 토요일 반가운 알람이 왔다. 화랑대 도서관에서 예약한 자료가 도착했다는 메시지다. 처음 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예약해두었으니 거진 세 달만에 내 차례가 돌아온 것이다. 득달같이 달려가 찾은 책은 매해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펴내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다. 데뷔한 지 10년이 되지 않은 작가들의 수작 일곱 편을 뽑아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단편 모음집이며 올해로 열 여섯번째를 맞이했다. 어느 해부턴가 이상문학상 작품집보다 더 열렬히 찾아 읽게 되었는데, 다루는 주제가 신선한 것은 둘째치고라도 원석처럼 빛나는 작가들을 새롭게 알게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그들의 소설을 읽고 감탄하는 경험의 빈도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정보가 없는 상태로 좋은 작가와 소설을 골라내기는 비교적 어려운 일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런 작품집은 '올해는 이 작가와 이 소설만 읽어도 된다'고 집어주는 족보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매 작품마다 작가 노트와 평론가들의 해설이 실려있기에 개인적인 해석과 비교해보며 더 심도있게 고찰해볼 수도 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아주 편리하게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으니 꼭 읽어보시라는 것.


16회 작품집의 특이점은 일곱 명의 수상 작가가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작년 15회 역시 김기태 작가를 제외하고는 전부 여성 작가였다. 어느 기사에서 얘기한 것처럼 과연 요즘의 한국 문학은 '여성이 쓰고 여성이 읽는다'는 성향이 지배적인 것일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반가운 마음이다. 거의 모든 수상작에서 여성 인물 중심의 서사가 펼쳐지는데, 그들의 관계성과 감정에 대해 아무래도 더 깊숙이 공감이 되고 마음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대상 수상작인 <반의반의 반>을 보자. 손녀 현진, 엄마 윤미, 할머니 영실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들은 흔히 예상하듯 서로를 살피고 돌보고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만은 아니다. 영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딸과 손녀에게 절대 주고 싶지 않았던 오천만원의 행방을 찾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실은 자신의 것을 기꺼이 희생해 가족을 위하는 사람이 아니며, 고급스러운 실버타운의 삶으로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에 집중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더불어 진짜 딸과 손녀도 아닌 수경-오천만원을 훔쳐갔다는 의심을 사는 요양보호사-에게 마음을 쏟으며, 외려 그녀에게 '순도 높은 애정'을 느끼는 사람이다. 왜일까. 딸인 윤미와 손녀인 현진은 그 오천만원을 이미 제 것처럼 여기고 있어서일까. 어쩌면 가족이라 당연하게 느끼는 그 권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일곱 편의 소설에 대해 모두 이야기하긴 어려우니 특히 인상깊었던 몇 개의 작품만 다뤄보고자 한다. 이번 작품집에는 이미 읽었던 소설 두 편이 있었는데,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되어 있었던 서장원 작가의 <리틀 프라이드>와 성해나 작가의 단편집 <혼모노>에 실려있던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다. 두 작품 모두 다시 읽어도 과연 뛰어나다고 느껴질 만큼 발군의 소재 감각과 뛰어난 묘사가 두드러졌다.


<리틀 프라이드>의 주인공 토미는 탑 수술을 마친 트랜스남성이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 전환을 한 상태고 혜령이라는 여자 친구도 있다. 소설은 그가 올드독이라는 중고 거래-빈티지 의류 등을 리셀해서 파는-앱 회사에 들어가며 시작된다. 그는 들어간 회사에서 오스틴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만나게 된다. 오스틴은 164cm인 주인공보다 키가 작은 남성이지만 뛰어난 기획력과 인터뷰 실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오스틴은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본인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사지연장술을 행한다. 소설에서 트랜스남성인 주인공보다 더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오스틴으로 보인다. 그는 페미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라 묘사되며, '페미가 아닌 좋은 여자'를 만나 새출발을 하기 위해 사지연장술을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이 트랜스젠더임을 진즉 눈치챘고 자신과 유사한 '수술'을 했다는 점에서 전우라고 느끼기도 한다.


<리틀 프라이드>를 읽다보면 우리를 규정하는 것에 대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무엇을 위해 성별을 바꾸고, 외모를 바꾸는 것인가. 그것으로 무엇을 얻고 싶어하며, 남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것일까. 영화 <위대한 쇼맨>의 독특한 외모를 가진 이들을 보며, 퀴어 퍼레이드 속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기꺼이 옷을 벗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박수를 보내는 사람', 그게 어쩌면 나일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잣대로 남을 규정하는 것도 모자라 그 '다름'에 대해 감히 연민을 더하는.


<길티 클럽 : 호랑이 만지기>는 우리들의 삶에 꽤 가까이 맞닿아 있는 소설이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감히 거장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영화 감독 '김곤'과 그의 골수 팬이 되어버린 주인공. '나'는 김곤이 영화 촬영 중 아동 배우 학대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그를 지지한다. 우리 주위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음주 운전, 성매매, 불륜, 학교 폭력, 미투 등의 논란에 휩싸인 수많은 영화 감독, 작가, 배우, 아이돌들. 당장 떠올려봐도 너무 많은 인물들이 생각나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안타까운 점은 그런 실체를 맞닥뜨리고 나면 그 전까지 좋아했던 작품이나 음악을 더이상 편한 마음으로 감상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성해나 작가 역시 똑같은 과정을 거쳐온 듯 보인다. 다만 그녀가 쳇 베이커, 우디 앨런의 불쾌하고 끔찍한 면모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소설로 풀어내줘 고마울 따름이다. 더불어 인상 깊었던 문장도 함께 전한다. 과연 명문이다.


"이 소설은 그러한 상충에서 기인했다. 죄의식과 사랑(혹은 기호)이라는 얇은 막 하나를 오가며 번민하는 나 또는 우리의 내면을 마주보고 싶어서. 하드보드지처럼 두껍고 견고한 사랑도 있을 테지만, 대개의 사랑은 습자지 같아서 단 한 방울의 반감과 의심으로도 쉽게 찢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어떤 사랑은 푹 젖어도 찢어지지 않고 도리어 곤죽처럼 질퍽해진다. 사랑이고 죄의식이고 찬미고 경멸이고 죄다 흡수해 종내 원형을 알 수 없는 상태로."



마지막으로 꼭 이야기하고 싶은 소설은 이희주 작가의 <최애의 아이>다. 이희주 작가는 이번 작품집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일곱 편의 소설 중 단연 가장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여러 명의 평론가가 과연 '문제작'이라고 언급할 만큼 흥미로우면서도 충격적인 소설이다. 다들 읽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줄거리 전체를 축약하지는 않겠으나 설정은 꼭 이야기하고 싶다.

주인공 우미는 나와 또래의, 삼십대 중반의 여성이다. 학원 한 번 안 다녔지만 좋은 대학에 갔고, 대학 사 년 내내 십원 한 장 타쓰지 않았으며, 대기업에 입사해 다달이 엄마에게 용돈을 보내주는 훌륭한 딸이다. 본인 역시 개천 용이라고 생각할 만큼 성실하고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소설 속에서 그려지는 다른 평범한 친구들과 다른 까닭은 아이돌 '유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장애물이 나오면 우회 루트를 찾는 게 아니라 그걸 직선으로 뚫고' 가는 그녀답게 우미는 유리에 대한 사랑을 아주 강력한 행동으로 옮긴다. 우미는 희망 열매라는 정부 지원 사업에 신청해 유리의 정자를 꽤 큰 돈을 들여 구매한다. 몇 년 전 알려진 사유리의 케이스처럼 우미 역시 한부모 가정으로 유리의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이다.


유리를 사랑하고 소유하는데 이것보다 더 완벽한 결심이 있을까. 누군가는 이만큼 미친 짓도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작가가 그려주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이렇게 합리적인 일도 없는 것 같다. 무엇보다 소설의 방점은 충격적인 결말에 찍혀있다. 꼭 다들 읽어보시기를. 눈이 휘둥그레져 두번 세번씩 다시 읽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다른 작가들의 소설도 정말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서장원 작가가 그려내는 퀴어 중심의 소설과 이희주 작가가 묘사하는 아이돌 소설을 더 읽어보고 싶다. 이제 더이상 주변인이 아니게 될, 그들의 소설 속 인물이 궁금한 까닭이다. 그래서 오늘도 화랑 도서관 페이지에 접속해 슬며시 책 대여 신청 버튼을 눌러본다. 서장원 작가의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이희주 작가의 <성소년>, <환상통>. 벌써 책 부자가 된 기분이다. 곧 반가운 얼굴로 만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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