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ution : 책을 덮은 후 바로 악뮤의 ‘항해’ 앨범을 들을 것
가수 이찬혁의 첫 소설 <물 만난 물고기>는 과연 아름다운 이야기다. 작곡가이자 가수, 노래를 만드는 사람, 예술가의 글답다. 소설 전체에서 자연과 그림, 클래식을 비롯한 음악, 향기,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가 천착하는 대상들이 다양하게 묘사된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중간중간 삽입된 노랫말들이다. 이찬혁의 노래가 늘 우리에게 다가왔던 방식처럼 신선하고 특별하다. 마음을 울리는, 마치 시어같은 표현들이다.
"우리가 노래하듯이
우리가 말하듯이
우리가 헤엄치듯이 살길"
"난 자리에 가만히 앉아 항해하는 법을 알아"
"난 손발이 모두 묶여도 자유하는 법을 알아"
"옷 없이 걷고 싶어, 아무 상관 없이 시선
부끄러운지도 모르는 어릴 때로 돌아가서
"집 없이 살고 싶어, 온 세계를 누비며
두 눈에 담은 것도 없이 방에 갇혀 있긴 싫어"
누군가의 첫 소설은 반드시 자전적이라고 했던가. <물 만난 물고기>는 작가 이찬혁이 예술가로서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책 속 주인공인 '선이'처럼 그 역시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예술가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다 예술가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 그들이 흔히 '뮤즈'라 일컫는 이, 영감의 원천인 '해야'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해"
"그들은 표현하는 방법을 깨우친 거야"
"그건 바로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야. 자신이 표현한 것이 곧 자신이 되는 사람이야."
선이와 해야는 바다 위에서 처음 만났고, 또 다시 바닷속에서 헤어졌다. 그들이 만나고, 추억을 만들고, 함께 이상한 일들을 하고, 결국은 이별하는 이 한 편의 이야기가 한 편의 노래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 '항해'에는 선이가 해야를 그리워하며 읊조리는 두 문장이 쓰여 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물 만난 물고기>의 독서는 책을 덮은 순간 끝나지 않는다. 2019년에 발매된 악뮤의 정규 3집 앨범 '항해 SAILING'를 들으면 두 번째 독서 경험이 시작된다. 첫 번째 트랙 '뱃노래', 두 번째 트랙 '물 만난 물고기', 세 번째 트랙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그리고 다섯 번째 트랙 'FREEDOM', 일곱 번째 트랙 '고래'를 들으며 다시 책의 내용을 떠올리는 것이다. 책을 읽다 인상 깊어 적어두었던 그 구절들이 수현의 목소리로 귓가에 되살아난다. 멜로디가 붙은 문장들은 몇 배 이상의 감동으로 마음에 새겨진다. 음악의 힘은 참 위대해, 절로 읊조리게 되는 말이다.
이창동 감독의 <시>를 본 후에도 같은 경험을 했다. 가수 박기영이 부른 '아네스의 노래'는 영화를 보기 전에도 물론 아끼는 곡이었지만 <시>를 본 직후 들은 그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노랫말 하나 하나가 어찌나 비통하면서도 아름답던지, 박기영의 라이브 영상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 아직 영화 <시>와 '아네스의 노래'를 경험해보지 않은 분이 있다면 꼭 영화와 노래 순서로 만나보시길.
악뮤의 '항해' 앨범에 사로잡혀 전 곡을 반복하는 중이다. 혼자만의 상상으로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이찬혁이 <물 만난 물고기>를 완성한 후 각각의 장에서 영감을 얻어 '항해' 앨범을 만들지 않았을까 했다. 하지만 나무위키에서 찾아보니 '물 만난 물고기의 곡을 먼저 쓰고, 사람들이 곡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 것 같아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노래는 컨트리 풍으로 경쾌하고 즐겁지만 가사는 철학적이다. 책을 읽지 않고 곡만 들었다면 왜 이런 노랫말을 썼을지 의아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물 만난 물고기>를 읽고 나면 이 노랫말들이 꼭 해야가, 선이가 서로에게 해주는 말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후배 지현이가 선물해주었다. 예술가로서의 이찬혁을 좋아하는 지현이 덕분에 이토록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더불어 나 역시 이 소설을 통해, 또 '항해'라는 앨범을 통해 이찬혁을 한 발짝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가 그리는 아름다운 세계와 깊은 상상력, 세상을 긍정하는 태도가 좋다.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는 것이 곧 예술이라고 믿는다'는 그에게 우스갯소리로나마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찬혁이 하고 싶은 거 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