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복숭아향과 피비릿내가 뒤섞인 묘한 세계

by 채부장
2025. 07. 01


부끄러운 말이지만 지금까지 구병모 작가의 책을 한 권도 읽지 못했었다. <위저드 베이커리>, <아가미> 등 제목만 대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베스트셀러가 몇 권이나 있는데 말이다. 그 중 하나인 <파과> 역시 이혜영 배우가 나온 영화 예고편을 보고 나서야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8년에 출간되고 16년이 넘게 지나 무려 39쇄가 발행된 지금 이 시점에, 그야말로 이제서야.


소설에서도 그렇지만 주인공 ’조각‘이 처음 등장하는 지하철 씬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그 예고편을 보고나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결심할 정도로 아주 멋졌다. (같은 스토리의 책과 영화가 있다면 나는 무조건 책을 먼저 읽는 것을 선호하는 쪽이라 더 그러하다) 소설의 가장 앞에 위치한 약 7장 정도의 첫 챕터, 그리고 그 장의 첫 문단, 첫 문장까지. 몇 번 눈으로 되짚어 읽어간 것도 잠시, 어느새 나는 그 지하철 안에 함께 있었고 순식간에 이 소설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 여러분에게도 그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전달하고 싶다.


“그러니까 금요일 밤 시간대의 전철이란 으레 그렇다. 밀착을 넘어 연체동물의 빨판처럼 서로에게 흡착되다시피 한 생면부지의 몸 사이에 종잇장만 한 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운. 누군가 입을 열거나 숨을 쉴 때마다 머리 위로 끼얹어지는 고기 누린내와 마늘 냄새 문뱃내에 들숨을 참더라도, 그 냄새가 닷새간의 노동이 끝났음을 알려주기에 안도하는 시간. 과연 내년에도 혹은 다음 달에도, 심지어 당장 다음 주에도 이 시간에 전차를 탈 수 있을지에 대한 실존의 불안을 잠깐이나마 접어두는 시간. 다음 역 문이 열리고 쏟아지는 한 무더기의 노동자들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피로와 고뇌와, 얼른 귀가하여 젖은 휴지 같은 몸을 매트리스에 부려놓고 싶다는 갈망 사이로 그녀가 들어선다.“


이 몇 개의 문장들만 따라가도 온갖 냄새가 진동하는 금요일 밤 전철 안에 타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뒤따르는 문단에서는 그녀, ‘조각’에 대한 묘사가 이어진다. 그녀는 뚜렷한 인상이 남지 않을 만큼 적당히 평범한 65세의 여성이다. 하지만 그녀는 일종의 방역, 그러니까 청부 살인을 45년간 업으로 삼고 있다. 20년 넘는 회사 생활조차 감히 상상이 안 되는 이 사회에서 무려 45년이나. 내가 이 소설을 사랑하게 된 첫번째 이유는 압도적으로 그녀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쉽게 보지 못했던 연로한 여주인공, 그런데 너무나 프로페셔널한 킬러인 조각. 소설엔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명의 인물이 더 등장하지만 결국 이야기의 핵심은 조각이다.


그녀가 특별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쇠해가는 나이에 있다. ‘대모님’이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업계에서 퇴물로 분류되는 존재. 바짝 잘라 단정하게 다듬었지만, 거칠고 으스러지고 군데군데 이가 나간 것처럼 깨진 손톱과 다름 없는 그녀. 근육 떨림도, 간혹 숨이 찰 때도 있지만 아직 단종되기에는 이른 나이. 육체의 노화는 누구에게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오래도록 활동해 온 전문 살인 청부 업자에게는 더더욱 치명적이다. 그래서 그녀를 응원하게 된다. 비록 수없이 많은 이들을 방역해왔어도, 지금 내 눈 앞에 서 있는 조각은 강아지 ‘무명’을 마음 깊이 아끼는 사람이므로. 자신의 상처를 돌봐준 강 박사와 그의 가족을 지키고, 리어카를 끄는 할아버지를 도와줄 정도로 ‘보통’의 면모가 있는 사람이므로.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을 죽여왔던 조각을 애정해도 될까. 소설을 읽으며 줄곧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파과>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나도 모르게 그녀 생각이 많이 났다. 좀 우습기도 한데, 러닝을 하면서 조각처럼 날렵하게 뛰고 싶다는 생각도 해보고 지하철에 앉아있는 초로의 어머님을 보며 그녀를 연상하기도 했다. TV를 켤 때마다 영화 <파과>의 메인 스틸 컷이 나와 이혜영 배우의 얼굴이 자꾸 겹쳐보이곤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마음을 앗아간 인물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이렇게 마음을 많이 뺏겼는데, 다른 나이대의 독자들에겐 그녀가 어떻게 다가오는지 궁금해진다.


<파과>는 한번 집어들면 쉽게 놓을 수 없는, 일종의 프로포폴과 같은 책이다.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더니 프로포폴에 빨려드는 감각이 생생하여 가져와봤다) 그만큼 몰입감 있는 소설이라는 이야기다. 얼마 전 읽은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역시 넷플릭스보다 재밌는 책이라고 입소문을 타지 않았는가. <파과>는 제작자들이 왜 영화로, 뮤지컬로 만들고 싶어했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을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각국의 스릴러 소설을 읽는 걸 취미로 두는데-서평은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좀 더 가볍게 읽을 수 있다-심지어 ‘재미’의 측면에서 <파과>는 여느 스릴러 소설보다 뛰어났다고 하겠다.


쉽게 읽히는 데 반해 소설 곳곳에서 처음 보는 단어와 표현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햇귀가 밝을 무렵‘에서의 ’햇귀‘는 해돋이 때 처음으로 비치는 빛을 의미하며, ’노그라지는 바람에‘의 ‘노그라지다’는 지쳐서 맥이 빠지고 축 늘어진다는 표현이다. ‘힁허케 집으로 돌아가 보았을 때’의 ‘힁허케’는 ‘휭하니’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 ‘쉬척지근한 인간’의 ‘쉬척지근’은 몹시 쉰 듯한 데가 있다는 뜻이다. 처음 보는 단어들임에도 묘하게 뉘앙스를 알아차릴 수 있는, 말의 냄새가 있는 표현들이다. 실제로 구병모 작가의 글은 말맛이 뛰어나다. 문장으로 묘사할 때는 물론, 등장인물의 대화가 옮겨질 때도 역시 그렇다.


조각의 변해가는 감정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밀도 있게 따라붙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말맛 때문인 듯하다. 나이 들어가는 여성 청부 살인 업자로서의 열패감, 갑작스러운 감정에 대한 당혹감,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 그녀의 흘러온 삶 속에서 전달되는 고단함. 마치 작가와 주인공이 한 몸인 것처럼 우리도 조각의 마음을 제 것인양 들여다볼 수 있다.


“그녀는 한 달 전 3번 진료실을 나서며 느꼈던 현기증을 닮은 감각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며, 이 조손을 바라보면서 그때의 감각을 굳이 상기하지 않을 것이다. 잠깐이나마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이룬 살점과 핏방울과 뼛조각들을 잊고 긴장이 풀린 채 따뜻한 꿈을 꿀 뻔했던 순간을, 링거 병의 파편을 신중하게 주워 담던 손가락과, 그대의 모든 죄를 사하노라는 듯한 소독약 냄새 섞인 미소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마음속에 피어오른 희미한 태동 같은 것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이 아닌 다른 세계에 접속했기 때문에 생겨난 작은 흥분에 불과하며, 거기 몸을 깊이 담그지 못하고 발만 살짝 적셨다가 돌아 나오는 데서 비롯한 아쉬움의 반영일 뿐이다.”


“조각은 걷는 동안 문득 봉지에서 백도 한 개를 꺼내 코에 대본다. 꼭지와 머리에 날염한 듯한 홍조를 띠고 분홍에서 하양까지 바림이 이루어진 얇은 껍질은 벨벳 같으며 표면의 보송보송한 솜털도 과육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향을 가리지 못하는데 그 냄새에 콧속이 자극되어 혀끝에 남아 있던 미소의 쓴맛이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한다.”


앞으로도 <파과>를 생각할 때마다 복숭아가 떠오를 것 같다. 다만 갓 딴 복숭아가 아닌, 왜인지 시간이 오래 지나 무를대로 물러버린 복숭아. 살짝만 부딪혀도 상처가 나버리고, 누르는 대로 움푹 들어가는 무른 복숭아 말이다. 멍들었지만 오래 두었기에 더 달고 향기로우며 어딘가 피비린내가 섞여드는 듯한, 그렇지만 단내에 묻혀 묘한 향기를 풍기는 그런 복숭아. 당신 손에도 꼭 들려주고 싶은, 그런 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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