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와 베끼기를 통해 신에게 다가서는 법
화랑 도서관에서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낭비와 베끼기>라는 어딘가 모순적인-혹은 연결되지 않는-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자기만의 현재에 도달하는 글쓰기에 관하여'라는 부제였다. 아, 이런 사람의 책이라면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한 얼마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려나. 딱히 누구를 향한 것도, 영리 행위도 못 되는, 그렇다고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 나의 글쓰기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지금의 고민과 꽤 맞닿아 있는 책이었다.
책은 김선오 시인의 서문으로 시작한다. 서문의 제목은 '불결한 삶을 베껴쓰기'. 나는 시인의 소개를 듣고서야 아일린 마일스라는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1992년 미국 대선에 출마한 퀴어 시인이자 소설가, 컬트적 존재로 불리며 록스타 시인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작가. 그녀는 대선 당시 '나는 이런 대통령을 원한다(I want a president)'라는 조이 레너드의 지지문으로 더 유명해졌는데, 아주 인상깊어 몇 번을 다시 읽었기에 이 글의 마무리에 붙이고자 한다. 다시 서문으로 돌아가, 김선오 시인 역시 아일린 마일스가 말하는 '쓰기' 행위에 대해 깊게 공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는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조와 수치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편이지만' 글쓰기에 대한 태도만큼은 분명하게 견지하고 있다. 표지에 쓰여 있는 다음 글귀가 그녀의 생각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쓰기와 그리기, 그리기와 쓰기, 베끼고 베끼고 베끼기. 신이여. 신이란 이런 반복에서 발생하는 그 무엇이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말이다. 나는 그것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그 언어를 사랑해야 한다. 그게 내가 세계와, 또 신과 맺은 계약이다. 신이여."
아일린 마일스에게 '쓰기'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행동이다. 그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그녀는 비로소 신에게 다가선다. 다시 읽어도 아름답고 힘있는 문장들이다. 보통 책에서 맘에 드는 문단을 발견하면 사진으로 찍어 텍스트를 붙여넣곤 하는데, 이 글귀는 몇 번이고 다시 보며 옮겨 적었다. 그러다보니 단어와 문장이, 그리고 그것들이 품은 뜻과 힘이 더 여실히 느껴졌다. 어느새 나도 작가가 말한 '베끼고 베끼고 베끼기'를 실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처럼 책을 읽으며 저장해두고 싶은 부분이 꽤 많았는데 아래의 문단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더 와닿았던 것이다.
"나는 냅킨에 글을 썼고, 담뱃갑에 글을 썼고, 각양각색 조그만 노트에 글을 썼고, 리걸패드에도 썼다. 두꺼운 글씨로 술술 써지는, 처음에는 펜텔에서 나오던 롤링라이터로 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나중에는 파이롯트 G-2의 볼드라고 알려진 1.0밀리미터로 바뀌었지만. 내가 만화가들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점이 그들은 만화, 즉 세계 속에 글씨를 써내려간다는 것이다. 세계는 숨결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하는 풍선이며, 우리는 살아 있음과 숨쉬기라는 그 곡선을 기록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선 표면이 커졌다고 느낄 때 글을 쓴다."
글쓰기, 쓰기 행위 그 자체의 충만감과 행복감이 느껴진다. 글쓰기는 그녀의 생활이며 삶이다. 비단 아일린 마일스가 유명한 작가여서, 시인이여서, 소설가여서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똑같은 일상을 살아내는 그 하루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각에 잠기는가. 그렇게 흘려보냈던 생각들을 포착해서 나만의 냅킨과 담뱃갑에 남겨둔다면. 그것들을 쓰고 그리며 베끼면서 신에게 좀 더 다가설 수 있을까.
아일린 마일스는 '어째서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어느 시점에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는 것인지 자주 의아'하다고 썼다. 좋은 글에 감명 받고, 재밌는 글에 몰입하고, 그런 글을 쓰는 이들을 동경하는 나에게 내리꽂히는 질문이다. 비록 그 정도의 능력이 없어도 글쓰기는 생활이 될 수 있다. 명확한 방향성이나 뚜렷한 목적이 없더라도 글을 쓰고 싶다. 그다지 길지 않아도, 특별한 내용이 없어도 괜찮다. 가만 보면 읽고 쓰는 것 자체가 늘 나에게는 기쁨이었기 때문에.
이 글은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발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썼다. 시간이 지나 돌아봤을 때 어쩌면 아일린 마일스라는 작가를 기억하지 못할 지도, 다시금 깨달은 글쓰기의 충만함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지만 이 글은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다. 2025년 7월의 어느 바다 위에 멈춘 채로.
마지막으로 꼭 소개하고 싶은 아일린 마일스의 몇몇 문장과 함께, 앞서 말한 조이 레너드의 지지문을 붙여 둔다.
"내 생각에 글을 쓴다는 건 기껏해야 늘 그렇듯 글쓰기 속으로 훅 내달리는 것이다. 그 실행의 지평으로. 저 바깥을 향해. 비록 글의 주제가 '나'라고 해도 똑같이 느껴진다. 나는 사라진다. 필연적으로."
"그건 마치 아버지가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주었을 때와 같다. 아버지는 왼손으로 자전거 핸들과 안장 사이 가로대를 잡은 채 다른 한 손을 내 등에 두었고, 나는 핸들을 꼭 잡았다. 계속 페달을 밟으라고 아버지가 소리치자, 별안간 나는 미래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고, 아버지는 사라졌다. 나는 혼자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이 일을 하는 방식 전체에는 그 산물 안에 아주 많은 세계를 담고자 하는 야망이 실려 있다. 그 세계가 좀 보잘것없이 어수선하고 불결하도록, 그래서 사람들이 건물 안에 들어가듯 진입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건물은 공공건물이다. 작품을 끝내는 순간 여기 온 사람들의 것이니까. 내가 가장 먼저 그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그 뒤에는 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이게 '나의 글쓰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는 흔한 실천이다. 그것이 내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