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경험을 만드는 디자인]

최종 사용자로서의 ‘나‘를 탐구하는 일

by 채부장

2025. 7. 24


경험 경제, 사용자 경험 디자인, 경험 서비스 등 고객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개념에 대해서는 다들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팔리는 경험을 만드는 디자인]이라는 다소 투박한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책은 300페이지가 넘어가는 분량 내내 '경험'이라는 개념을 재차 강조한다. 넓게는 개인의 삶이 어떤 경험을 가질 때 가장 만족스러운지부터 어떤 요소들로 경험 환경을 조성해야하는지, 경험 속에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 그 경험을 향상시켜야 하는 지도. 마치는 챕터에서 저자들이 이야기하듯 그들은 교육자이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합 이론서에 가깝게 썼다. 포괄적인 개념부터 구체적인 사례까지 말이다. 따라서 책을 서머리하기보다는 나의 '경험 디자인'에 관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아래, 방금 전의 따끈따끈한 경험을 옮긴다.


어디서 독후감을 쓸까 하다가 우선 저녁을 먹자는 생각이 들어 건강식을 표방하는 동네밥집으로 향했다. 선택의 까닭은 식당 밖에 붙어있는 아보카도 덮밥 포스터가 제법 감각적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스무개가 넘어가는 아보카도 토핑, 그것의 신선해보이는 컬러감과 소담한 계란후라이, 김가루까지. 먹음직스러워보이는 사진에 홀려 어느새 계산대 앞에 섰는데 왠걸, 아보카도 덮밥이 만 삼천원이 넘어가는 게 아닌가.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놀라 메뉴를 급선회했다. (요즈음의 물가가 다 그렇다고 하면 난 여전히 그 가격에 대해 새삼스러운 감정을 겪고 있다 하겠다.) 팔천원 대의 콩국수는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오늘같이 더운 여름날에 잘 어울리겠다 싶었다. 그런데 어라, 밀가루면을 두부면으로 바꾸니 자동으로 삼천 구백원이 추가되었다. 삼천 구백원이라니, 이럴거면 그냥 아보카도 덮밥을 먹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격 때문에 번복하는 치졸한 고객이 되기 싫어서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90%가 내 탓임에도 왠지 모르게 사기당한 느낌을 안고 자리에 앉았다. 두부면 콩국수는 의외로 빠르게 나왔고 점원은 그릇을 가져다주며 '반찬은 셀프에요'라고 말했다. 비싼 콩국수를 먹으면서 김치와 단무지, 수저까지도 손수 가져와야한다니. 궁극의 마지막 경험은 콩국수를 입에 넣는 순간이었다. 콩국수 국물이 냉동된 상태였는지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 아주 텁텁했으므로. 결국 아보카도 덮밥 포스터에 홀렸던 첫번째 경험을 제외하고는 경험 디자인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두부면 콩국수를 너무 디스해서 미안한 마음


이와 같은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어떤 가게에 들어가기 전 그 곳을 선택하는 경험, 들어가고 난 후 그 공간의 분위기, 냄새, 점원의 친절함을 경험하고 종국에는 그 가게의 상품을 구매하고 체험하는 것. 책에서는 '터치포인트 템플릿'이라는 도구를 통해 최종 사용자들의 '원하는 반응'을 도출해낼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아까의 밥집에서 그들이 제공한 경험을 통해 나에게 원하는 반응은 무엇이었을지 상상해본다. 아마 '음식이 정말 맛있었어요. 가격 대비 양이나 맛이 아주 훌륭하고 참 친절하시네요. 다음에 꼭 다시 올게요' 정도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의 식사는 부정적으로 기억에 남는 경험의 유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고객 경험은 꼭 무언가를 판매하는 데서만 일어나진 않는다. 7장에서 언급하고 있듯 '신규 채용 직원 적응 경험' 역시 터치포인트 템플릿이 필요하다. 회사의 인사팀 뿐 아니라 사람을 상대하고 사람과 함께 일하는 우리 모두에게 이 개념은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 몰라도, 당신은 이미 경험을 디자인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책이 말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 대두된다.


'당신은 의도적으로 경험을 디자인하고 있는가?'


잠시 회사를 벗어나 내가 사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공간을 상상해본다. 지난주 북스테이 사장님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반추하며. 핵심은 아주 소규모더라도 당신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좋아하는 것들로 그 곳을 채워 팬들이 찾아오게 만들어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자꾸 상상 속 나만의 아지트를 떠올리게 되었다. 예를 들어 이런 문단을 읽으면서 말이다.


'경험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기를 알아야 한다. 동기는 그 사람과 경험이 얼마나 잘 맞는지 이해하는 시작점이 된다. 경험에 참여할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은 그 경험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

'당신이 구상하는 경험에 참여하는 사람이 왜 중요한지 충분히 알았기를 바란다. 이들에 대해 최대한 알아내기 위해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참여자의 관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관점에서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 너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북스테이와 요가원을 꿈꾸는 까닭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것에 대해 기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소개했을 때 그것에 깊게 감명받아줄 사람. 이 책에 따르면 참여자는 결국 나 자신-혹은 나와 아주 유사한 사람들-이 된다. 그렇다면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 이 경험에 대한 동기를 탐구하고, 선호하는 취향이 담긴 유사한 공간과 컨텐츠를 찾아 정보를 잔뜩 습득할 차례다.


두 번의 트레바리 모임에 참여하며 클럽장님의 이력에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난번 '집무실' 디자인 과정을 들을 때 특히 그랬다. 집무실의 의자를 몇 번이고 직접 디자인해서 만드는 과정, 공간의 향과 조명, 습도까지 적정하게 조절하려고 부단히 노력한 과정을 봤기 때문이다. (물론 파슨스에서 프로덕트 디자인을 전공한 재자를 같은 레벨로 생각할 수 없긴 하지만) 공간 디자인, 경험 디자인이란 말 그대로 그것을 오랫동안 공부한 디자이너만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엄두가 안 날 무렵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창조성은 타고나는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역시 이 부분엔 이견이 있다. 창조성은 분명 타고나는 무엇이기도 하기에) 당신은 원래 창조적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는 믿음은 그 근거가 없다고 분명하게 판명이 났다. 유전적 요소나 환경 요소가 특정 성향이 발달하도록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자발적으로 나서서 다양한 경험 디자인 문제를 해결하면 창조성이 길러진다. 꾸준히 운동하면 근력이 생기는 것처럼, 이리저리 활용하면서 창조성이 나타난다.'


'경험을 디자인할 때는 불완전해도 좋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만 한다면 많은 실패를 겪는 것이 괜찮다. 사실, 창조적인 일을 하려면 빨리, 많이 실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디자인 씽킹에도 해당된다.'


늘 나는 창조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분명 예술이나 디자인은 어느 정도 타고난 영역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부딪히고 실패하다 보면 적어도 어느 레벨까지는 가볼 수 있지 않을까, 조금 용기를 얻어본다. 책에는 이미 이론과 실전이 모두 담겨있다. 이제 저자들이 낸 숙제를 해내는 것은 내 노력의 문제다. 경험을 고르고, 최종 사용자를 그려보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것, 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경험 지도까지 만들면 완성이다. 프로그램 기획안을 쓰듯 내 아지트에 대한 기획안도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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