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와 암실]

악몽에 대하여

by 채부장
25. 10. 3


굉장히 겁이 많은 성격임에도 '공포'라는 단어에 묘하게 사로잡히곤 한다. 공포 영화, 공포 체험, 공포 실화 같은. 차를 타고 가다 노래 부르는 일도 지겨워질 때면 유튜브에서 '괴담 낭독회'나 '기묘한 죽음', '실화 공포 사연' 등을 틀어놓고 듣기도 한다. 훌륭한 호러 영화도 사랑하는데 특히 '유전', '사바하', '겟아웃', '곡성' 같은 작품은 장르를 떠나 경탄하면서 본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공포 소설을 그만큼 탐닉하지 못하는 까닭은 책이 그 어떤 매체보다 혼자, 오롯이 마주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고로 훨씬 더 무섭다는 이야기다.


특히 국내 공포 소설에 대한 경험을 묻는다면 아주 일천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읽은 작품이라고 해봐야 조예은 작가의 <적산가옥의 유령>, 전건우 작가의 <밤의 이야기꾼들> 정도가 되겠다. 그 일천한 경험에 지금 다루고자 하는 박민정 작가의 <호수와 암실>을 슬쩍 올려놓아본다. 왜 '공포'의 매력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했는가. 그건 <호수와 암실>이 교보문고 북다 출판의 공포 소설 시리즈 '앙스트'의 첫번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호수와 암실>은 내가 기대했던 전형적인 공포 소설의 내용이나 형식은 아니었다. 외려 굉장히 현대화된, 그래서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의 공포를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미성년자나 여성에 대한 미디어의 착취, 디지털 성범죄, SNS 속 유령 같은 것들 말이다. 주인공 연화가 사진작가 턱수염과 킴의 SNS를 통해 그들의 약점을 파악하는 부분을 읽다보면, 누군가 이 SNS 세상 속 수많은 정보를 통해 나의 모든 걸 알아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르는데 상대방은 나를 아는 상황, 그가 나를 흉내내어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나로 기능할 수도 있는 상황. 현실로 맞닥뜨린다면 손이 떨릴 만큼 무서운 일이다.


<호수와 암실> 7번째 장의 제목은 '새벽'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무섭고 두려운 어떤 순간을 상상하게 한 장이었다. 이 글의 소제목인 '악몽에 대하여'는 이 부분을 읽고 떠올렸다.


"돌아보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나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당연히 거기 그렇게 있어야 할 사람처럼 로사가 웃고 있다. 그렇지, 그건 재이의 웃음소리가 아니다. 쭉 찢어진 세로 동공, 파충류 눈이다. 눈은 그대로인데 입만 웃고 있다. ... 나는 그만 핸들에서 양손을 놓았고 계기판의 시뻘건 눈금이 올라가는 모습을 맥없이 바라보다 소스라치며 잠에서 깼다. 출근까지 고작 네 시간 남짓 남았는데 잠에서 깨버렸다. 나는 다시 가려움을 느꼈다. 허벅지 안쪽 고간을 쓰라릴 때까지 미친 듯이 긁었다. 침대맡 스탠드 불을 켰다.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았다. 마치 기묘한 새벽의 고속도로로 이내 끌려들어갈 것 같았다."


연화의 악몽은 현실에서도 그렇듯 차와 운전, 로사다. 나의 악몽은 다양하게 변주되긴 하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현실에서도 내가 무척 두려워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며 악몽이 점점 더 생생해진다. 며칠 전에 꾼 꿈을 지금 당장 머릿속에서 불러올 수 있을 만큼. 꽤 최근에는 화장실 하수구로 엄청나게 큰 벌레를 밀어넣는 악몽을 꿨다. 영화 '미스트'에 나왔던 벌레의 생김새였는데, 반쯤 접혀서 들어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 앞에 선연하다. 그 전에는 비행기 꿈을 꿨다. 해질 무렵에 혼자 아파트 거실에 서 있었는데 베란다 바깥 쪽으로 비행기 머리가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거대한 비행기가 아주 가까이 지나가며 아파트 외벽을 긁어댔다. 아파트를 지나간 비행기는 강 건너 건물에 추락해 폭발해버렸다.


요즘은 잘 꾸진 않지만 몇 년전에는 엘레베이터 꿈을 많이 꿨다. 홀로 엘레베이터에 타있는데 층수가 끝도 없이 올라가는 꿈. 천천히 오르다 삼십 층이 되고 빠르게 오십 층, 팔십 층, 백 층을 넘어가버리고 어느 순간 뚝 떨어지는 것이다. 꼭 무서운 순간을 대면하기 직전에 악몽은 끝나버리지만 말이다. 악몽에서 깨어난 연화가 그렇듯 나 역시 다시 잠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악몽 끝에 혼자 남겨진 새벽녘의 시간은 그 꿈 속으로 다시 끌려들어가는 것만큼 공포스럽다. 새벽의 적막함은 기묘한 상상을 불러내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유튜브를 튼다.


"문득 마주한 새벽을 보며 생각했다. 옛사람들은 새벽을 신이하게 여기기도 했다. 이승도 저승도 아닌 어떤 시간과 장소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 출근길에만 해도 새벽빛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금세 날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아직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이전 조상들은 이 낮과 밤의 경계를 충분히 무서워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 몸은 언제나 그대로인 것만 같은데 자꾸만 모습을 바꾸는 자연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가 있나."


<호수와 암실>에는 크게 세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연화, 연화가 아끼는 동생인 패션 모델 재이, 연화와 함께 학창시절을 보낸 로사. 연화는 재이를 사랑하지만 재이는 그 감정 모두를 되돌려주지는 않는다. 연화가 줄 수 없는 부분을 로사에게 의존하고, 그 사실을 연화에게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연화는 더욱 더 로사를 증오하고 로사는 그런 연화를 비웃는 듯하다. 그들은 서로에게 열패감을 느끼기도 하고, 질투하고, 집착하기도 한다. 이런 감정을 결코 모를 수가 없는 이유는 나 역시 이렇게 깊은-동성의-친우 관계에서, 혹은 그런 무리에서 필연적으로 느껴왔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실제로 마주하는 악몽만큼 두려운 것은 내면 속 깊은 어두움이라고. 우리가 얼마간 사로잡혀 있고, 우리에게 씌여 있는 어두운 것들 말이다. 그것은 과거의 악몽일 수도 있고 누군가로부터 주입된 실체 없는 목소리일 수도 있다. 나를 좀먹는 집착이나 열망일 수도, 그릇된 곳으로 향하는 질투나 증오일 수도 있다. 가끔 자신의 어두운 마음과 마주할 때 느끼는 공포, 이 마음이 더 커져서 나의 나머지 부분마저 다 삼켜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그런 경험이 있다면 분명 이 소설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박민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분명 곱씹어볼 만한 문장이다. 어쩌면 <호수와 암실>이 공포 소설이라는 장르로 쓰여진 이유일테다.


"연화가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인지 독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 부분이 이 이야기의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는 연화이기도 하지만 작가인 나 자신이기도 하다. 이 차갑고 덤덤한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산 신도시 ‘인크 커피’에서 <호수와 암실> 독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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