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친구 사귀기

6월 27일

by 너랑

발레학원에서 마일리스라는 친구를 사귀었다. 발레학원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무슨 용기였는지 내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스몰토크로 시작된 이야기는 점점 길어져 심지어 마일리스는 자기 내려야 할 정류장도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녀와 수요일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다. 어학원 친구들과는 끝나고 밥도 먹고 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누구와 외부에서 만나는 약속을 잡는 건 파리에서 처음이다. 마일리스는 함께 박물관에 가자고 제안했다. 또 자기가 무얼 먹을지 레스토랑도 알아봐 준다고 해서 현지인 친구는 정말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때와 같은 화요일이었다. 학원에서 돌아오니 너무 배가 고팠다. 체류기간 동안 고추장을 다 사용해야 하기에, 고추장을 넣고 말도 안 되는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여기 와서 매운 음식을 하도 안 먹었더니, 이제 고추장 한 주걱만 들어가도 땀을 뻘뻘 흘리는 맵찔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마일리스가 이상한 것을 보내왔다. 구글로 자기 위치를 공유해 온 것이다. 처음 보는 신문물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이어 나도 내 위치를 공유했다. 그랬더니 마일리스가 "너 아직도 거기야?"라고 물어왔다. 간담이 서늘해졌다. 뭔가 잘못된 것 같았다. "내일 만나는 거 아니야?"라고 채팅을 보냈더니, "오늘 만나는 거 아니야?"라고 답장이 왔다. 채팅창을 쭉쭉 올려보니 진짜로 화요일이 약속이었다. 나는 다시 땀을 뻘뻘 흘렸다. 이번에는 고추장 때문이 아니었다.


벌써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렸음에도 마일리스는 웃으면서 자기는 괜찮았다고 말했다. 약속시간을 지키는데 예민한 편이어서 이렇게 늦은 적이 없었는데, 하필이면 오랫동안 고대하던 날에 늦어버리고 말았다. 역시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녀의 환하게 웃는 하얀 얼굴을 보면서 무슨 짓을 한 건지 자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자기도 파리를 구경하고 좋았다면서. 나였으면 외국인과 약속을 정했을 때 이렇게 늦는다면 화가 났을 법도 한데, 마일리스는 도리어 내가 너를 서두르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더 미안해져 혀라도 깨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함께 간 까르나 발레 박물관의 입장료는 무료였다. 마일리스는 역사전공 중인 학생인데 박물관에서 내가 궁금했던 것들을 술술 답해주었다.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 졸려오기 마련인데, 친구가 설명해 주는 것을 들으니 알차게 그리고 선택적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마일리스는 박물관과 미술관에 자주 간다고 했다. 대학생들에게 입장권이 무료이기 때문이란다. 유럽은 독일도 그렇고 프랑스도 그렇고, 학생들에게 제공해 주는 혜택이 무척 많은 것 같다. 비록 지금 나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프랑스로 유학을 온다고 해도 그 혜택을 다 누리지는 못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현지에서 가장 좋은 정보들은 당연하지만 현지인들에게서 얻을 수 있다. 구글맵을 통해서도 좋은 정보들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현지인을 통해 로컬들이 공유하는 정보들을 더 많이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한국인들이 아는 한국 최고의 삼겹살집과 가이드 북에 나오는 삼겹살집은 다를 것이다. 마일리스도 현지인으로서, 내일 파리에서 열리는 무료 콘서트가 있다는 새로운 정보도 주었다. 그리고 친구들과 같이 가기로 했지만, 나도 와도 된다고 초대해 주었다. 별일 없던 일상에 즐길 수 있는 일이 생겨서 좋았다.


마일리스와 헤어지고, 한참을 걸어 일전에 또 다른 현지인인 바리스타가 추천해 준 “최고의” 파리 카페에도 갔다. 카페의 주인에게 “이곳 커피가 아주 파리에서 제일 맛있다고 소문이 났다면서요?”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명함을 건넸다. 그리고 서울에도 커피샵이 두 개 있다고 했다. 열심히 파리를 헤매며 맛있는 커피를 찾으러 다녔는데 서울에도 샵이 있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역시 팬시하고 훌륭한 커피는 다 서울에 있나 보다.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더니, 좋은 커피 역시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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