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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랑 Sep 25. 2023

생맥주에 대한 로망

맥주를 향한 외사랑의 기록


     ‘책은 고통을 주지만 맥주는 우리를 즐겁게 한다. 영원한 것은 맥주뿐!’ 내가 방금 지어낸 말 같지만, 사실은 독일의 대문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한 말이다. 괴테의 말처럼 맥주는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황금빛 밀밭을 닮은 술 위에 부서지는 파도 같은 하얀 거품, 맥주는 미학적으로도 아름답다. 또 맥주는 노동자를 위로하는 술이기도 하다. 고된 하루를 마치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맥주를 싫어했다. 많은 사람들이 과일향이 나는 맥주는 먹기 편할 것이라며 추천해 주었지만, 결과적으로 맥주를 더 싫어하게 되었다. 밀 맛과 과일 맛이 함께 난다니, 밥에 오렌지 잼을 비벼 먹는 것 같아서 어떻게 즐겨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심플한 맛을 좋아해 크루아상도 기본만 고집하는 나에게 너무나 기분 나쁜 맛이었다. 결국 독자노선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 한잔하자고 모였을 때, 혼자서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처럼 소주 한 병을 시켜 놓고 홀짝이는 것이었다. 다들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면서 “캬!” 할 때, 나 혼자 미간을 찌푸리며 “크!” 하면서.


 하지만 나도 맥주를 잘 마시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맥주가 어울리는 때와 장소가 있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시원하게 한잔한다든지, 아니면 운동 끝나고 시원하게 한 잔, 아니면 야구 경기를 보면서 시원하게 한 잔. 이때의 맥주의 역할은 다른 술들로는 대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주를 꺼낸다면 갑자기 처연한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소주는 특유의 애달픔이 있기 때문에, 괜히 드라마에서 실연을 당한 주인공들이 소주를 마시는 게 아니다. 또한 와인은 너무 잰 체하는 느낌이라, 축구 경기를 볼 때 시원하게 와인을 마셨다는 것은 얼토당토않다. 막걸리는 어떤가? 택도 없다. 어디서나 분위기를 잘 맞추려고 노력하는데, 맥주 때문에 풍류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맥주를 배우지 않고는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고 느꼈다.


 어쩌면 한국 맥주만 맛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콜릿도 수입한 것이 훨씬 맛있는 것처럼 맥주도 본토에서 먹으면 환상적인 맛이 날지도 몰랐다.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본토로 맥주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일본의 아사히, 네덜란드의 하이네켄, 아일랜드의 기네스, 체코의 필스너 또 독일의 쾰시 맥주도 궁금했다. 맥주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해 보겠다고 맥주의 본 고장들을 찾아가 보기로 한 것이다. 작가가 아름다운 한 줄의 문장을 적어내기 위하여 머리를 쥐 싸매고, 축구 선수가 경기에서 한 골을 넣기 위하여 피땀 흘리며 훈련을 감내하는 것처럼,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으면서…….


 

 먼저, 일본과 네덜란드에서는 공장까지 가서 생맥주를 맛보았다. 나 같은 초심자에게는 공장에서 방금 내린 맥주와 기성품으로 파는 캔 맥주 사이에는 맛의 차이가 없었다. 맥주 공장들의 가공품을 만들어내는 기술력에 놀라며,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그다음은 기네스의 본고장, 아일랜드로 떠났다. 어쩌면 나는 뼛속까지 홍대병으로, 흑맥주 파일 줄도 모른다고 기대했다. 유명한 펍에서 흑맥주를 한 잔 시키고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시원하게 한 모금!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이었기에, 눈을 번쩍 뜬 상태로 남몰래 하수구에 남은 맥주를 콸콸 부어 버렸다. 기네스 팬이라면 천인공노할 만행이었지만 나 역시도 기네스의 맛에 천인공노했다. 두 번째 시도 역시 대실패였다. 마지막으로 체코와 독일에서는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셨다. 친구는 냉정한 표정으로 나와 함께 맥주를 마시면 술맛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오만상을 쓰고 맛없게 먹은 모양이었다. 맥주를 배우고 싶다고 전 세계를 떠돌면서도 맥주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최근에는 맥주를 마신다. 허무하게도 갑자기 그럴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을 갔다가 소주를 진탕 마시고 술병이 심하게 나서 더 이상 소주를 먹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려서다. 청순하게 일렁이는 투명한 액체를 상상할 때마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 이후로 술을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올 때마다 악착같이 맥주를 마시니 허무하게도 어느 순간 마실 수 있었다. 이제는 퇴근하고 시원하게 한잔한다든지, 아니면 운동 끝나고 시원하게 한 잔, 아니면 야구 경기를 보면서 시원하게 한잔 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맥주를 얻고 소주를 잃었다. 이제는 홍상수 영화의 주인공처럼 소주 한 잔 놓아두고 고뇌하며 처량을 떠는 낭만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또 실연당했을 때는 이제 무슨 술을 마셔야 한단 말인가? 겨우 하나를 얻었더니 다른 하나는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소주를 잃은 아픔에 가슴 한 구석이 찌릿해왔다.



 이토록 맥주를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했건만 이제 친구들이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거 참 곤란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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