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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랑 Dec 06. 2023

글쓰기와 짐 싸기

 글쓰기 스승님은 말씀하셨다. 자고로 글쓰기는 비워내는 과정이라고. 그 말은 내가 아는 주제가 나왔다고 신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스승님께서는 한 가지 글에서는 연관성이 있는 이야기만 해야 하고 쓸데없는 정보를 담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욕심을 버리고 필요한 말만 추려내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한다고.


 짐을 싸며 느꼈다. 짐 싸기도 역시 비워내는 과정이 아닌가 하고. 가볍게 다녀와야지 하고 생각했으면서도, 여행 가방을 보면 평소에 입지도 않는 옷들과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여행에서는 혹시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잔뜩 쑤셔넣게 된다. 지난 여행에서 내 짐은 무려 30kg이었다. 욕심이 가득 담긴 캐리어를 들고 이동할 때마다 어찌나 고되었는지 모른다. 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필요한지 자책하고 원망했다. 물건에 대한 욕망에 얼마나 지구가 아파하고, 인류가 아파하고, 내 팔이 아픈지.


 내가 가지고 있는 캐리어는 두 개다. 하나는 기내용 캐리어이고, 하나는 이민가방인데 극단적인 두 개의 가방을 가지고 있다 보니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여행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이번만큼은 단출한 백패커 흉내를 내고 싶었기에 작은 기내용 캐리어를 선택했다.


 하지만 짐을 싸다 보니, 말도 안 되게 많은 짐들을 욱여넣고 있었다. 작은 캐리어 안에서 탈주하려고 소리치는 물건들을 보자니 한숨이 나왔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다. 마음을 다잡고 짐들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이 티셔츠는 많이 입을 것 같지 않으니 빼고, 저건 이 티셔츠는 너무 두꺼우니 빼자. 글쓰기에서 필요 없는 문장을 지워낼 때의 신중함으로, 어쩌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솎아 냈다. 여전히 물건들은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는 많이 작아져있었다. 이 정도면 잘 달래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지퍼로 입막음을 하면 될 것 같았다.


 공항에서 짐의 무게를 재었다. 고작 11kg이었다. 지난 여행에 비해 20kg이나 짐을 다이어트할 수 있었다. 고작 11kg에 일상을 욱여넣을 수 있었다니.



비워낸 자의 캐리어



 합리적인 짐 싸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일관성 있는 글쓰기는 얼마나 어려운가,

 비워내고 또 비워내야 할지니.







 하지만 면세점에서 물건들을 몇 개 사다 보니 짐이 금세 늘어나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이 무소유를 터득하지 못한, 배움이 부족한 중생은, 중간 사이즈의 캐리어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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