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6월 1일

by 너랑


나는 스몰토크를 좋아한다. 우리나라가 스몰토크 문화가 있는 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종종 모르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긴다. 아일랜드와 영국에 갔을 때는 오며 가며 만나는 이들과 간단한 대화를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 와서는 상황이 달라져 버렸다. 언어를 잘하지 못하니 자꾸 이방인이 되는 기분이다. 물론 이방인이 맞긴 맞지만…! 게다가 프랑스인들은 본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한숨을 쉬고 열받은 표정을 짓는다. 소심한 나는 그들의 한숨의 횟수만큼 점점 더 위축이 되어간다.


집 앞에 있는 카페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구글맵의 평점이 높고 리뷰가 칭찬일색이어서 궁금했다.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카페 알롱제를 시켰다. 그런데 갑자기 웨이터가 다가오더니 초콜릿쿠키를 하나 주는 것이었다. 이게 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프랑스어가 짧은 터라 물론 물어보지는 못했다. 이런 호의 하나에 외로운 여행자의 가슴이 변덕스럽게 설레왔다.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카페를 나가며 주인에게 그 쿠키를 왜 주었냐고 영어로 물어봤다. 그랬더니 손님이 왔는데 자기가 담배 피우러 갔다 와서 주문을 늦게 받은 게 적절하지 못한 행동이었던 것 같아서 서비스로 쿠키를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프랑스의 불친절에 익숙해져 그가 담배를 피우러 간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주인이 왕인 프랑스에서도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장사하는 사람이 있다니. 이 카페에 올 때마다 그가 담배 피우러 가기를 바라게 될 것 같다. 파리에 와서 처음으로 다시 오고 싶은 카페가 생겼다.



파리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발레 클래스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일상을 유지시켜 주는 하나의 축이 발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럽의 다른 도시들에서는 발레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인지, 만족스러운 발레 클래스를 찾기가 어려웠다. 구글 맵을 켜고 파리의 발레 클래스를 하나씩 클릭하며 나에게 적합해 보이는 학원 하나를 겨우 찾았다. 가보니 학원이라기보다는 그냥 체육관 같은 홀을 빌린 것이었다. 그곳에는 누가 봐도 발레를 전공한 것 같아 보이는 여자아이가 클래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여기에 처음 오는 것이라면서, 여기서 수업이 있는 것이 맞냐고 물었다. 체육관에 동양인 여자 한 명이 덩그러니 있으니 많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파리 오페라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말도 안 돼. 파리 오페라 학생과 함께 수업을 듣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러던 중 한 여인이 와서 대화에 동참했다. 그녀는 드물게도 영어를 무척 잘하는 프랑스인이었다. 내가 프랑스어로 말하려고 시도하면 유창한 영어로 답변을 해주었다. 흑. 제 프랑스어가 그렇게 못 들어주겠나요?


음악에 맞춰서 쁠리에를 하면서 편안함을 느꼈다. 생활에 익숙한 것 한 가지가 생겼다는 사실이 크게 위로가 되었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지드래곤처럼 합장해서 인사를 했다. 당황하면 나는 자꾸 합장을 하는데, 왜 그러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다. 선생님도 같이 합장을 해 화답해 주었다. 합장이 우리나라 예의인 줄 알았나 보다. 환장할 노릇이다. 체육관을 나오니 영어를 잘하는 프랑스인 ‘소피’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피는 나에게 학원의 수업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본인의 번호도 알려주었다. 파리에서 첫 발레 클래스 메이트를 만든 것이다.


근 며칠간 외로웠는데 오늘은 프랑스인들과 소통했다는 이유로 조금은 기뻤다. 사실 서울도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에게 그다지 친절한 도시는 아닐 것이다. 물론 안녕하세요만 하면 한국인들은 아주 좋아해 준다는 것이 프랑스 사람들과 다른 면이긴 하지만. 빨리 프랑스어를 잘하게 되어서 이들과 편안하게 소통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어 실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빨리 느는 것이 아니기에 요원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은밀하게, 프랑스인들의 약간은 삐딱하고 시니컬한 유머감각을 좋아한다. 그들의 조크를 그들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기를 꿈꾸게 되는 날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울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