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독일어 학원에서 만난 친구가 유학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학을 목적으로 열심히 언어를
공부해 왔으니 언젠가 떠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항상 주어지는 길만 걸으며 살아왔기에, 그녀처럼 자기 길을 야무지게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그녀에게 심하게 열등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물리적으로 한국에서 먼 곳에 있어, 심정적으로도 내 삶을 관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 다행이었다.
나는 취미로 독일어를 시작한 것이지만, 독일어를 배우는 이들은 항상 목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유학이나 취업 같은. 같이 공부하던 이들이 하나둘씩 독일로 떠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독일에 가야 하나 심각하게 갈등했었다. 남겨지는 기분이 너무나 싫었고, 한국에서의 안정된 삶도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러한 이유로 독일어 어학점수도 땄다. 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전공 공부를 지속할만큼, 전공에 큰 애정이 없었다. 게다가 언어도 완벽하지 않은 데 엄격한 독일인들 사이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공부를 심화한다니 내키지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렇게 혼자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은 싫으니 참 환장할 노릇이다. 나중에도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을까봐 두려움이 몰려왔다.
복잡한 마음으로 걷던 내게 마법처럼 체셔 캣이 나타났다.
나는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체셔 캣은 대답했다. 어디로 가고 싶느냐고
나는 고민하며 이야기한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고.
체셔 캣은 얄미운 표정으로 말한다. 그러면 어디로 가든 상관없지 않겠느냐고.
체셔 캣의 대답에 나는 더 혼란스러워진다. 얄궂은 체셔 캣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홀로 곱씹듯 말한다.
내가 원하는 길을 나도 알고 싶다고.
아니 내가 가야만 하는 길을 나도 알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