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25년이다. 나는 새해 첫날을 유독 좋아했다. 우리 가족은 매 해 카운트 다운을 함께 하면서 보신각 종소리를 함께 들었다. 어릴 때는 신화 오빠들이 나오는 가요대전처럼 인생 일대의 중요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아버지가 보신각 종소리로 채널을 돌리는 것이 화가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종소리를 듣는 행위 자체가 경건하게 느껴졌고, 매년 꼭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둔탁하게 울리는 새해의 첫 종소리를 들으면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힘들고 슬펐던 일은 종소리와 함께 과거로 보내고, 희망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하지만 새해 첫날을 좋아'했다'는 것은 과거형이다. 징그러울 만큼 많아진 나이도 하나의 이유다. 이제는 어른들이 본인의 나이를 가물가물해하셨던 이유가 이해가 된다. 정신적으로는 어디에선가 나이가 멈춰있는데 자꾸 억지로 꾸역꾸역 나이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 듦은 자연의 섭리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도 때로는 폭력적으로도 느껴질 수 있는 법 아닌가. 비폭력주의자로서 이런 상황을 용납하기가 어려워졌다. 자연과 타협을 통해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신년 맞이가 더 홀가분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이는 제가 먹고 싶을 때만 한 살씩 먹을 게요. 앞으로 삼십 년은 안 먹고 싶을 것 같네요.
물론 새해는 무슨 일이든 새롭게 시작하기에 적합하기도 하거니와, 인생에서 성취해야 할 새로운 목표를 세우기도 좋다. 그런데 10년 동안 같은 목표를 세우며 지키지도 못하다 보니 어느 순간 목표를 세우는 게 큰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내 친구도 올해 목표는 운동하기라고 했지만,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그녀의 2023년 목표도, 2024년 목표도 운동하기였다는 것을. 이런 일이 빈번하다 보니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되어 관성적으로 목표를 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신년이 부담스러워졌음에도, 이미 온 것을 어찌하겠는가. 새해라고 사실 너무나 거창하고 특별하게만 생각하니 겁을 먹게 되는 것 같다. 한 살 더 먹었으니 그만큼 더 성숙해져야 하는 것처럼, 새로운 목표를 꼭 이뤄내야만 하는 것처럼. 그저 살아가야 하는 똑같은 매일매일인데 말이다. 현실에 발을 내리고 충실하게 살아 내는 것. 그것이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나에게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