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께

by 너랑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예요. 쑥스럽지만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새해가 오는 것이 두려워서예요. 사람들은 왜 이런 날을 축하하는 것일까요? 고작 어제보다 하루 늙는 날일 뿐인데 말이에요. 모두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을 보면 이상해요. 요란한 불꽃놀이에 착잡한 마음을 감추려는 것일까요?


삼십 대 중반부터 숫자에 짓눌려 마음이 늙은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응당 찾아올 변화들을 서서히 마주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 종종 감상에 젖어들곤 한답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슬프기 때문일까요. 엄마가 약해지는 것을 보는 것이 마음 아프기 때문일까요. 늘 어린 줄로만 알던 동생 나이에 놀라는 것이 당황스럽기 때문일까요.


최근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어요. 다가올 날이 무서워서요. 미래를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뾰족한 특별함이 없는 삶인데, 그 평범함을 앞으로 평생 견뎌야 한다는 게 더 자신이 없기도 해요. 어릴 때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내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도 얼마 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내일이 더 겁이 나는 이유는 나이들 수록 받아들여야 하는 책임감들 때문이에요. 어떻게 어른들은 그런 삶의 무게를, 슬픔을, 괴로움을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걸까요? 그런 걸 보면 제가 세상에서 제일 유약한 사람 같다니까요.


나이가 들어도 분명 좋은 일들은 있겠지요? 서른 살이 막 되었을 때에 막막함을 떠올려보면 지금 재미있게 지내고 있으니 말이에요. 지금 생각하니 서른은 너무 어리고 좋은 나이였는데 그때는 참 그 나이가 벅차기만 했었네요. 앞으로 나에게 올 날들도 그럴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잘 되지가 않아요. 왜 일어나지 않은 것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시간이 너무 빨리 가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평생 되지 않았을 것 같았던 나이가 되어버렸어요. 그리고 이 속도대로 나이 들어 어느샌가 관 안에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해요. 그러면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아요. 그 모습이 너무 실감 나게 머릿속에서 그려지거든요.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고요? 하지만 진짜 그런 걸요. 생각해 봐요. 2002년 월드컵을, 수능시험을, 첫 미팅을. 다 생생히 기억나지 않나요?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일까요?


할 수 있었던 일들을 상상해 봐요. 어쩌면 저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있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를 평생 책임질 수 있을 만한 용기는 평생 생기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엄마한테 미안하기도 해요. 엄마는 아직도 제가 가정을 이루길 바라시는 것 같거든요. 그래도 전 자신이 없어요. 아마도 계속 없을 것 같아요.


삶에서 후회되는 것이 있어요. 항상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거예요. 외국에서 공부를 더 해봤으면 어땠을까, 취업을 했으면 어땠을까,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블루베리를 따봤으면 어땠을까. 지금쯤 잘 정착해서 태닝을 하고 서핑을 하는 삶을 즐기고 있을까요? 아니면 견디지 못해 지금 이 자리에 다시 있으려나요? 가보지 않은 길은 참 궁금하다니까요!


하지만 다 가능성뿐인 것들이니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도, 백만 유튜버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도, 춤꾼이 되어서 스트리트 우먼파이터에 나갔을 수도 있었겠다는 말도. 이렇게 ‘만약’이라는 가정은 즐겁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니까요.


2026년은 병오년이에요. 붉은말의 해. 그래서 다가오는 한 해에는 하지 않으면 후회될 법한 일들을 열정적으로 해볼까 해요. 이미 먹어가는 나이를 어쩌겠어요. 세상이 너는 특별하지 않다고 해도,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이니까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누리고 매일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수밖에요. 좀 진부한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원래 좀 진부한 사람인 걸. 설마 제가 한 살 더 먹었다고 슬퍼하며 무기력증에 걸리는 것을 바라시는 건 아니겠죠?


새해가 되니 당신 생각이 많이 나요. 비록 만날 수는 없지만 항상 절 응원해 주신다고 믿고 있어요. 그런 건 느껴지잖아요. 저 또한 당신이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가끔 제가 그리우신가요? 저도 당신이 보고 싶어요! 다시 편지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래의 나에게


2026년 1월 1일의 내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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