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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국인이다

by 미누리

외국인이라는 신분은 참 거추장스럽다. 아무리 조용히 있으려 해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나는 앞에 나서거나 관심을 즐기는 성격은 못돼, 외국인 신분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그림자처럼 조용히 숨어있으려고 할 때가 많다. 학창 시절에도 교실에서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야 마음이 편했고, 선생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 내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으니 얼마나 힘든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며칠 만에 다시 마히양가나에 다녀왔다. 친분 있는 스리랑카 스님 덕분에 마히양가나 초등학교 시설 개보수 시공식과 우물 만들기 완공식에 초청받았다. 두 사업 모두 스리랑카 스님들께서 추진하셨다. 마히양가나 초등학교는 휴대전화 신호가 터지지 않을 만큼 외진 지역에 있었다. 외부와의 연결이 끊어진 느낌이었다. 나라의 소식이 가장 늦게 전달되는 곳이라 그런지 이방인의 방문을 가히 놀라울 만큼 환영해 줬는데, 살면서 그토록 큰 환대는 처음 받아 봤다.


내빈석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데, 아이들이 내 뒤로 몰려들어 물었다. "이름이 뭐예요?"부터 시작해 "어디서 왔어요?", "싱할라어 어떻게 배웠어요?", "언제 또 올 거예요?"라며 쉴 새 없이 말을 걸었다. 짓궂은 아이들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고, 이쪽도 좀 봐달라며 돌멩이를 던졌다. 행사에 방해될까 봐 "얘들아, 잠깐만 조용히 해줘. 이따가 대답할게."라고 말했지만, 나의 불완전한 싱할라어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어린 호기심을 더 자극할 뿐이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허허벌판에 있는 간이 화장실에 갔다. 볼일을 보고 화장실 문을 열었더니, 전교생이 간이 화장실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내가 화장실 간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다 같이 숨죽이고 기다렸을까. 혹시 내가 어떤 소리를 낼지 궁금해서 귀 기울인 걸까. 당황했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웃었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그 안에서 무엇을 했냐고 묻지 않았으나, 괜히 혼자 창피해서 이렇게 말했다.


"작은 일 봤어요... 들어가서 확인해 보세요... 깨끗하게 썼어요..."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남발해 버렸다. 외국인의 횡설수설에 학교는 웃음바다가 됐다. 내가 발걸음을 옮기자 아이들은 내게 달려와 떠나지 말라며 양팔을 잡아당겼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었다. 몸이 두 동강 나기 직전에 내 비명을 들은 선생님들께서 제지해 주셔서 간신히 아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보통 시골 아이들은 외국인을 보면 수줍어서 숨는데, 이곳 아이들은 꽤 적극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내 주변을 에워싸고 학교에서 배운 노래를 불러줬다. 아주 맑고 힘찬 목소리였다. 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으니 민망하고 의아했다. 캔디는 관광 도시라 외국인이 많으니 그 사이에 껴서 내 집 앞마당처럼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오지 산골에서는 나 혼자만 너무 이질적인 존재였다. 평생 외국인을 본 적이 없을 수도 있는 순수한 아이들에게 나쁜 기억을 남기지 않으려고 언행을 더 조심했다.


오후에는 다른 마을의 우물 만들기 완공식에 다녀왔다. 스님들을 따라 간 산기슭 마을에는 생기와 기쁨이 가득했다. 관에서 물이 터져 나오자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는데, 사람들의 함성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물 없는 마을에 물길이 열렸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마을 사람들은 나더러 떠나지 말고 여기서 같이 살자고 했다. 방도 주고, 밥도 주고, 이제 물도 줄 수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여기 남으라고 했다.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이 불러준 우렁찬 노랫소리와 어른들이 보여준 야망 가득한 눈빛이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자선 사업 책임자는 요즘 스리랑카에서 화제인 스님이셨다. 친구들이 그 스님의 영상을 몇 번 공유해 얼굴은 익히 알고 있었다. 얼마 전에 하숙집 식구들과 그 스님이 세우신 사원에 다녀왔는데 사람들이 "스님께서 좋은 일을 많이 하신다."라고 칭찬하는 걸 얼핏 들었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스님을 실물로 뵈니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스님은 브라운관에서 보이는 모습보다 훨씬 유쾌하셨다. 권위를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왜 사람들이 그 스님을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책임 스님께서 싱할라어로 인터뷰 영상을 찍자고 하셨다. 스리랑카에서 현지어를 하는 외국인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유명세를 탄다. 예전에도 내가 싱할라어를 말하는 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영상 촬영을 조르는 바람에 성가셨던 기억이 있다. 이제 좀 잠잠해졌는데 페이스북 팔로워가 100만 명이 넘는 스님의 계정에 나의 싱할라어 인터뷰가 올라가면 그때의 악몽이 반복될 것 같아 겁이 났다. 요즘 하루도 빠짐없이 캔디 호수를 산책하는데, 누군가 알아보고 말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전 세계 어디나 비슷하겠다만, 특히 스리랑카는 외국인, 미혼, 여성 신분으로 살기엔 위험한 일이 제법 많은 나라다. 젊은 여자를 보면 휘파람을 불거나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남자들이 많고, 외국인과의 결혼이 신분 상승의 기회로 여겨져 괜히 찝쩍대는 사람도 많다. 피부 하얀 외국인은 으레 돈이 많고 개방적일 거라고 생각해서 쉽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가 필요하다. 아무리 사람들이 잘 챙겨준다 한들 이곳에서 나를 책임질 사람은 결국 나 하나뿐이기에 짧은 영상 하나 찍는 것도 조심스럽다.


유명해진다는 건 양날의 검이다. 외국인이 싱할라어로 자선 사업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좋은 일이 더 알려져 사람들의 관심과 기부가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유익할지 몰라도 개인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나의 귀환을 모든 친구에게 알린 것이 아니라, 왜 연락을 안 했냐며 서운해하거나 만나자고 귀찮게 할 사람들도 떠올랐다. 결국 스님께 스리랑카에서 안전하게 지내다 가고 싶은 뜻을 정중히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셔서 인터뷰는 하지 않았다.


이상했다. 내가 뭘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이런 자리에 초대받고 이런 환대를 받는 걸까. 갑작스레 마히양가나 행사 참석을 권유받았을 때도, 인터뷰를 요청받았을 때도 자선 사업에 이바지한 게 없는 내가 감히 껴도 되나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웃으며 손뼉을 치는 것뿐인데. 그래도 이렇게 함께했기 때문에 아직도 스리랑카에는 전파가 닿지 않는 마을과 물 없는 마을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작은 마을을 포기하지 않고 찾아 헤매는 스님들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리랑카의 희망을 보았다는 기쁨과 함께 마히양가나를 나왔다. 언젠가 나도 그 희망에 보탬이 되길 바라며.


외국인이라는 신분이 꼭 불편하기만 한 건 아닌 것 같다. 때로는 낯설고 부족한 존재이기에 누군가에게 작은 기쁨이 될 수도 있고 위로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사랑받는다면, 같은 이유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줄 수도 있다.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벽이 아닌 다리가 될 수 있다면 언젠가 내가 그 다리가 되어 스리랑카 사람들과 세상을 이어주고 싶다. 외국인으로서 겪는 불편함보다는 외국인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고 싶다.


그러나, 그 길은 생각만큼 순탄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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