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서 가장 영적인 곳은 불치사가 아닐까. 불치사(佛齒寺)는 그 이름대로 부처님의 치아 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원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임신, 출산, 생일, 결혼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순결을 상징하는 새하얀 옷을 입고 불치사에 가서 공덕을 쌓고 소원을 빈다. 불치사에 가면 스리랑카 사람들의 거룩한 불심을 확인할 수 있다. 나도 캔디에서 매일 경건한 마음으로 흰옷을 입고 불치사에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가 늘었다.
불치사 여러 부서에 지인이 있다는 건 정말 복된 일이다. 오늘은 미디어 부서에서 '사찰 촬영 주의 사항'을 주제로 특별 강의를 열어 줬다. 오직 나만을 위한 개인 과외였다. 저녁에 한국에서 성지 순례자들이 불치사에 단체 방문한다고 해서 내가 촬영 봉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일 강사가 된 직원 란잔 씨는 불치사에서 사진 찍기 좋은 구역에 나를 데리고 다니며 스리랑카에서 절이나 스님의 사진을 촬영할 때 주의해야 하는 사항을 알려주었다.
일일 강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직원들은 내게 치아 사리를 안치하고 있는 불치당에 들어가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본당 2층 가운데에 있는 불치당은 하루 세 번 공개되는데, 선택받은 소수만이 안에 들어가 치아 사리를 안치하고 있는 사리함 바로 앞에서 참배할 수 있다. 그건 대부분 큰 시주를 하거나 불치사에 인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안에서 참배하는 동안 바깥문은 닫아 놓는다. 밖에서만 참배할 수 있는 보통의 사람들은 그 문이 다시 열리길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매우 거룩한 공간인데 외국인인 내가 그들을 제치고 들어가는 건 공평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다른 사람을 통해 기회를 얻기보단 스스로 노력해서 쟁취하는 편이다. 정의롭거나 자생력이 강해서 그런 게 아니라 인맥이 없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인덕이 녹록지 않아 허탈했던 적이 많기 때문에 스리랑카에서 인맥으로 특별 대우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불치당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새치기하는 거 싫어해요. 지인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쉽게 얻고 싶지 않아요."
"이런 좋은 기회를 거절하는 건 좋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곳이라면 더더욱 들어가고 싶지 않네요."
저녁이 되자 한국의 성지 순례자들이 불치사에 방문했다. 순례자들을 열심히 쫓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드렸다. 그런데 그들이 불치당에 들어간다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얼떨결에 그들을 따라가 오전에 들어가기 싫다고 거절했던 불치당 앞에 섰다. 나만 빠진다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불치사 직원들에게는 그럴싸한 말로 거절해 놓고, 저녁이 되자 자국민을 우르르 데리고 온 꼴이 돼서 민망했다. 제발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 말라고 기도했으나, 애석하게도 여러 명을 마주쳐버렸다.
바깥에서 불치당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는 스리랑카 참배객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의 주인인 그들은 여기까지 들어올 수 없다. 저 멀리서 불치당을 바라보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몇 시간에서 몇 년이 걸렸을 것이다. 어쩌면 불치당 밖에서 치아 사리를 참배하는 것마저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스리랑카에서 평생을 살아도 불치당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인데, 우리 같은 외국인은 너무 쉽게 그 기회를 얻어 부끄러웠다. 어쩐지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가까이에서 본 사리함은 눈부신 금동탑이었다. 화려하게 빛나는 금동탑 주변에는 사람들이 시주한 지폐가 쌓여있었다. 그 앞에서 고개를 숙여 예를 올리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무엇을 향해 고개를 숙였던 걸까. 불치당 밖에는 가장 낮은 바닥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진중한 마음으로 무언가 읊조리며 낮게 엎드려 있는 사람들 사이로 우리는 행렬을 이루어 지나갔다. 그들이 조아린 머리를 보며 생각했다. 나는 이들 앞에서 무엇을 낮출 수 있나.
불치사는 스리랑카에서 가장 종교적이면서 가장 세속적인 곳이다. 부자들만이 대형 공양을 보시할 수 있고, 보시한 사람들만이 불치당 안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물론, 거액을 기부하는 시주자가 있기에 국가유산을 관리할 수 있고, 기반 시설이 편리해져 여행객이 늘고, 그렇게 모인 입장료는 직원들 월급으로 이어지고, 일자리가 늘어나면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하나의 덕이 계속 돌고 돌아 더 큰 덕으로 전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 섬에 발붙여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값을 치를 수 없어 소외된다는 것이 안타깝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돈을 많이 지불하는 사람에게 그에 합당한 결과를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거래지만, 절에서마저 그런 세속의 정취를 느끼는 건 마음이 아픈 일이다. 최소한 사찰만은, 스님들만은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청정하게 남아줬으면 하는 건 너무 이기적인 바람일까.
한국인 순례자들을 배웅하고 다시 불치사로 돌아갔다. 무언가 열심히 닦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직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오늘은 바닥 청소 좀 하고 가야겠어요. 빗자루 좀 빌려주세요." 그렇게 2층 마루를 쓸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내게 좋은 일 한다며 복 많이 받으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들이 몇 시간째 서서 기다리고 있는 치아 사리 참배를, 나는 너무 쉽게 그 안까지 들어가 참배하고 왔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의 숭고한 시간을 가로챈 것에 대한 사죄의 마음으로 불치사 문이 닫힐 때까지 바닥을 쓸고 또 쓸었다.
직원들에게 빗자루를 돌려주며 복을 지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의 동료야. 앞으로 뭐든지 말만 해. 네 부탁은 다 들어줄게." 아, 그들은 언제나 내게 도움의 손길을 뻗었고, 나는 그 손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불치사에서 특별 개인 지도를 받은 것도, 법당을 청소할 기회를 얻은 것도 순전히 인맥 덕분이었다. 그동안 불치사를 내 집처럼 드나들며 친구들이 베푸는 선의를 얼마나 기쁘게 즐겼던가.
쉽게 기회를 얻는 사람들을 욕하면서도 무심코 그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 공간에 들어갔고, 직원 휴게실에서 차를 얻어 마셨고, VIP 화장실을 이용했고, 내부인 출입문으로 불치사를 드나들기도 했다. 이 모든 게 인맥으로 얻어낸 혜택이었는데, 나는 치아 사리 앞에서만 애써 선량한 척을 했던 것이다. 가장 성스러운 공간에서만 공평한 척하는 아주 못된 심보였다. 바닥보다 더러운 마음이었다. 닦아야 했던 건 내 마음이었다.
밤 9시, 어둠 속에서 더욱 찬연한 불치사를 등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온몸으로 수치심이 기어 올라와 불치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고귀한 인연으로 다른 사람의 기회를 박탈하고, 나만 이롭게 잘 살려고 한 것은 아니었나 뉘우쳤다. 앞으로는 모든 인연에 조금 더 섬세하게 다가가겠다고, 그 인연의 힘으로 조금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들어보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누군가 내게 건넨 선의를 기억하며 나도 누군가의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 나만을 위한 불치사가 모두를 위한 불치사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