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시를 앞둔 아세니는 몸도 마음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몇 해 전만 해도 한없이 해맑게 웃던 아이였는데, 오랜만에 다시 만난 아세니는 힘든 수험 생활 때문인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얼굴은 반쪽이 되었고, 말수는 줄었다. 성숙해진 건지 우울해진 건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예전과 달리 생기 없는 모습은 종종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기분이 전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세니가 진학을 꿈꾸는 페라데니야 국립대학교 탐방을 계획했다. 캔디에 있는 페라데니야 대학교는 스리랑카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불현듯 서울의 한 대학교에 교환 학생으로 왔다 간 아마야가 떠올랐다. 그녀의 모교가 페라데니야 대학교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 혹시 학교를 안내해 줄 수 있는지 물었는데, 고맙게도 아마야는 흔쾌히 부탁에 응해 주었다.
대학교 입구에서 아마야와 그녀의 동기 말키를 만났다. 두 사람은 불교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했다. 학교 내부는 원칙적으로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어 있지만, 아마야가 사전 방문 신청을 해둔 덕분에 우리는 도서관에 들어갈 수 있었고, 사서의 특별 안내까지 받았다. 도서관에 줄지어 있던 낡은 나무 의자와 색이 바랜 종이책들은 고풍스러운 멋을 뽐냈다. 그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아세니의 눈이 반짝였다.
학교는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학교 안에 일반 버스 정류장이 여러 군데 있을 정도였다. 널찍한 공간에 비해 학생 수는 적어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초록색 나무와 잔디가 학교 곳곳에 부드럽게 펼쳐져 있었는데, 건물 너비보다 넓은 잔디가 인상적이었다. 자연 보호를 위해 잔디를 밟지 않는 게 학교 규칙이라고 했다. 이렇게 살아 숨 쉬는 자연과 함께 공부한다면 학업 스트레스가 자연히 날아갈 것 같아 부러웠다.
스리랑카 학식은 무슨 맛일지 궁금해 학생 식당으로 향했다. 학식의 장점은 저렴하면서도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 나는 스리랑카 음식인 로띠와 홍차를 골랐다. 다른 이는 로띠와 커피, 또 다른 이는 빵과 커피. 각자의 취향에 맞게 먹고 싶은 음식을 자유롭게 조합했다. 로띠는 코코넛 가루가 섞인 납작한 밀가루 빵인데, 렌틸콩 카레와 함께 나왔다. 로띠를 찢어 카레에 찍어 먹으니 담백함과 짭짤함의 조화가 부드럽게 어우러졌다.
페라데니야 대학교는 마하웰리 강을 끼고 있다. 학교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 위의 다리에 올라앉아 강물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감상하며 담소를 즐겼다. 학교의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만큼 드라마나 결혼사진 촬영지로도 명성이 자자하다고 했다. 아세니도 학교가 마음에 들었는지 강물 너머를 한참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오고 싶다고 말했다.
교정에는 lover's lane(연인의 길)이라고 불리는 데이트 장소도 있었다. 수풀이 우거진 공원이었는데, 경비원이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교내 연인에게만 입장이 허용돼 일일이 신분 확인을 한다고 했다. 아직은 젊은 남녀의 연애에 보수적이라 데이트할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은 스리랑카에서, 대학교가 직접 공간을 내주며 학생들의 연애를 장려한다는 게 신기했다. 사랑과 낭만이 넘치는 학교였다.
아마야와 말키는 우리에게 학교를 샅샅이 보여주었고, 아세니의 진로 고민을 진심으로 들어주었다. 친절한 두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아세니와 나는 캔디 시내로 돌아왔다. 다행히 아세니의 기분이 좋아보였다. 저녁으로 뭐를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세니는 들뜬 목소리로 KFC 햄버거를 먹고 싶다고 말했다. 그건 아세니가 좋아하는 음식이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다.
건강과 환경에 좋지 않은 그런 음식이 세계인의 식탁을 점령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통 식문화를 위협하는 세계화된 식탁을 경계해 여행지에서는 되도록 현지 음식점을 찾아가려고 한다. 또 내가 쓴 돈이 그 지역에서 순환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본사로 수익이 흘러가는 프랜차이즈는 자연스레 피하게 됐다. 햄버거, 치킨,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 매장은 해외는 물론 한국에서도 거의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스리랑카 음식은 이곳이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없기에 더더욱 가정식을 고집한다.
그래서 햄버거 매장에 들어서는 일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하루 종일 언니들을 따라다니며 힘들었을 아세니를 위해 내 원칙을 잠시 내려놓기로 했다. KFC에서 하숙집 식구들 몫까지 햄버거를 샀다. 하숙집에 돌아와 식탁에서 햄버거 포장지를 열었는데 역시 구미가 당기지 않아 내 몫은 식구들에게 양보하고, 나는 아침에 남은 집밥을 먹었다. 하숙집의 따뜻한 밥과 정갈한 찬을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와 한 입이라도 더 욱여넣고 음미하게 된다. 본의 아니게 하숙집 쌀통을 축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한국에서도 유독 집밥을 좋아했다. 그 이유는 따뜻한 밥에 담긴 엄마의 사랑과 정성 때문이었다. 그런 밥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가족들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자고 하면 집밥을 먹자고 우기고, 외출할 때도 밥은 꼭 집에서 챙겨 먹는 바람에 불효녀라고 농담 섞인 핀잔을 듣기도 했다. 다른 집에서는 한 입만 더 먹으라고 성화인데, 우리 집은 제발 밖에서 먹고 들어오라고 난리일 정도였다. 집밥을 먹는 식습관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것이다.
하숙집 식구들은 햄버거를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자주 먹지 않아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포장지만 남은 식탁을 보고 문득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이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만 사줌으로써 나의 취향과 신념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었다는 것을. 하숙집 식구들에게 음식을 사다 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모두 스리랑카 음식점에서 산 현지식이었다. 한 번쯤 색다른 음식을 도전해 봤으면 좋았을 텐데. 가족들은 언제나 내 입맛을 배려해 줬는데, 나만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모두가 행복한 식탁은 어떻게 차릴 수 있을까. 윤리적인 이유로, 종교적인 이유로, 체질의 이유로, 취향의 이유로 저마다 먹지 않는 음식이 있다. 그런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할 때 더욱 풍성한 식탁이 되지 않을까. 식탁 위에 올라야 하는 건 서로를 향한 배려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나를 위해 하숙집 엄마가 따로 하얀 반찬을 만들어 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숙집 식구들에게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둘째 남동생 말리떠가 큰소리로 피자를 좋아한다고 외쳤다. 그래서 다음에는 피자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피자 옆에 올려질 엄마의 따뜻한 밥과 하얀 반찬을 상상해 봤다. 모두가 행복한 식탁은 우리 하숙집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