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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너무해

by 미누리

지난밤의 소동은 잠잠해지고 결혼식 날이 밝았다. 새 가정의 탄생을 축복하는 듯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다. 신랑 신부와 들러리들은 미용실에서 단장을 마치고 바로 식장으로 이동했고, 남은 가족들은 집 마당에 있는 불상 앞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오늘 부부가 될 두 사람의 앞날을 축하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밤새 만든 전통 간식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코코넛 우유로 만든 끼리밧과 바삭한 코키스, 야자나무 수액으로 만든 케움과 도돌까지. 상다리가 부러질 것처럼 푸짐하게 차려진 잔칫상이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신랑 측 가족과 식장으로 향했다.


여자들은 형형색색 사리를, 남자들은 단정한 정장을 입었다. 스리랑카 결혼식에서 여성은 천 하나로 몸을 감싸고 한쪽 어깨에 걸치는 전통복 사리나, 서양식 드레스를 입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는 마땅한 옷을 준비하지 못해 한국에서 가져온 옷 중 그나마 가장 격식 있는 생활한복을 꺼내 입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지만, 한 번의 결혼식을 위해 값비싼 파티용 사리를 장만하는 건 낭비처럼 느껴졌다. 혼주께 먼저 옷을 보여드렸는데 다행히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는 걸 드러낼 수 있어 오히려 좋다며 웃으셨다.


한국과 스리랑카의 결혼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단연코 하객의 옷차림일 것이다. 한국은 신랑 신부가 가장 빛나야 하니 하객은 수수하게 입는 게 미덕이라 여기지만, 스리랑카는 하객 또한 주인공처럼 화려하고 눈부시게 꾸미는 게 미덕이다. 하객들은 평소에는 엄두도 내지 못할 과감한 옷에 도전한다. 한 번 입었던 옷은 다시 입지 않고, 매번 새 옷을 구매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평소에는 잘 꾸미지 않던 사람들이 결혼식 날만큼은 마치 이날만을 기다린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반짝반짝 치장하고 나타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의상에 담긴 정성이었다. 신랑 신부는 혼례복을 대여하지 않는다. 천을 직접 고르고, 모양을 상의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든다. 오늘의 신부는 무려 세 벌의 혼례복을 마련했다. 본식에서는 전통 사리를, 피로연에서는 연분홍 드레스를, 그리고 신혼여행을 마친 뒤 신랑의 집에서 열릴 홈커밍파티에서는 붉은 드레스를 입는다고 했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축복의 자리는 이어진다. 들러리의 옷과 신발까지 맞춰줘야 하니 맞춤 제작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 모든 수고는 결혼식을 위해 아낌없이 바쳐진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물었다. 딱 한 번 입을 옷인데 왜 대여하지 않고 굳이 맞춤으로 만드는 거냐고.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신부마다 몸의 형태도 개성도 제각기 다른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같은 옷을 입을 수 있겠어요?" 그 말 앞에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였으니까. 특정 체형에 표준화하고, 그 규격에 몸을 맞추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한국의 모습이 조금은 이상하게 느껴졌다. 스리랑카의 맞춤옷은 단순한 겉치장이 아니었다. 개인의 체형과 취향에 대한 존중이었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진행 시간이다. 스리랑카의 결혼식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종일 이어진다. 행사는 전통 무용인 캔디안 댄스로 막을 올렸다. 화려한 옷을 입은 무용수들이 전통 악기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자, 그 뒤를 따라 신랑 신부와 일가족 그리고 하객들이 순서대로 행진했다. 이어서 곱게 단장한 소녀들이 목소리를 모아 축가를 불렀고, 주례사의 축복과 반지 교환이 차례로 이어졌다. 의식을 마친 뒤에는 친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정성스레 선물을 나눠드렸다. 이 모든 절차가 그늘 하나 없는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진행됐다. 모처럼 땀을 많이 흘렸더니 어느새 몸이 축 늘어졌다.


오전 일정이 끝난 뒤, 야외 식탁에서 전통 음식을 나눠준다고 했지만 나는 이미 아침에 같은 음식을 배불리 먹은 데다 줄에 설 기운조차 없어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식장 안으로 들어가 잠시 쉬었다. 곧이어 전통 음식을 맛본 하객들이 하나둘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무엇을 하나 했더니 이번엔 주전부리 시간이라고 했다. 또 먹는다. 놀랍게도 어제 그렇게 찾아 헤맸던 캐슈너트가 눈앞에 놓여 있었다. 얼마나 어렵게 구한 것인지 알기에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한 알 한 알 음미했다. 캐슈너트 하나에 피로와 감동이 교차했다.


신랑의 삼촌 댁과 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들은 한국의 결혼식은 어떤지 궁금해했고 나는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한국은 간결하고 효율적인 방식을 선호해 예식은 대체로 한 시간 안에 끝나고, 결혼식 준비를 대행해 주는 웨딩플래너라는 직업도 있다고. 내 말을 들은 그들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럴 거면 결혼식을 왜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결혼식을 이토록 장대하게 치르는 이유는 무엇인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문화가 다른 만큼 사고방식도 다를 테니까. 어떤 방식이 더 좋다고 말할 순 없으나, 서로에게 '성의가 부족한 결혼식'과 '성의가 과한 결혼식'으로 느껴졌다.


뷔페식 점심 식사가 끝난 뒤, 하객들은 차례대로 신랑 신부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촬영이 마무리되자 기다렸다는 듯 DJ가 등장했고 본격적인 잔치가 시작되었다. 흥이 오른 하객들은 무대로 나와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열창했다. 듣고 있던 사람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춤판을 벌였다. 스리랑카에서 여러 번 목격한 풍경이지만, 여전히 그 열기에 녹아들지는 못하겠다. 몇몇 하객이 나를 무대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부끄러움이 많은 나는 끝내 순순히 따라나서지 못했다. 도저히 나를 내려놓고 가무를 즐길 자신이 없어 수줍게 손뼉만 치며 그들의 잔치를 바라보았다.


그때 신랑의 아버지가 내게 다가오셨다. 친구분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다른 테이블로 인사를 가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다니며 친지분들에게 한국에서 온 딸의 친구라고 자랑스레 소개하셨다. 나는 한술 더 떠 아버지의 어깨가 조금 더 올라갈 수 있도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스리랑카에 온 척 연기했다. 손님 중에는 타국에서 오거나 먼 지역에서 온 분들이 많았다. 모두 오랜만에 얼굴을 본다며 반가워했는데, 한동안 밀렸던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면서 나는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오늘 아주 행복해 보이세요."

"물론이지, 아주 행복해.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거든."


그 말을 듣고 나니, 스리랑카에서 결혼식을 이토록 거창하게 치르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국은 외식과 회식 문화가 발달해 밖에서 즐길 거리가 풍성하고, 대중교통도 편리해 먼 거리도 쉽게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스리랑카는 오락거리가 많지 않고, 만남의 장소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 많고, 대중교통은 불편하고, 시골에선 전화 신호조차 잘 닿지 않는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일가족이 한꺼번에 모이는 게 쉽지 않다 보니 결혼식 같은 특별한 날에는 모두가 함께 모여 대대적인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자주 보기 어려운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얼마나 신이 날까. 신랑 신부가 하객들과 흥겹게 놀고 싶은 마음,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 하객들이 자신의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 그 모든 마음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 다시는 가고 싶지 않던 스리랑카의 결혼식은 다시 또 가고 싶은 결혼식이 됐다. 다음에는 나 또한 화려하게 꾸며서 자리를 빛내리라. 그들이 내어준 음식을 귀하게 먹으리라. 우스꽝스럽게 춤추며 신랑 신부를 기쁘게 해주리라. 언제 또 볼 지 모를 이들을 위해 기꺼이 즐기리라.


너무 길게 느껴졌던 결혼식은,

너무 짧은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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