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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가만히 있으면 사라지고 마는 것들

월간 옥이네 2020년 8월호(VOL.38) 여는 글

말하고 듣고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기록은 사실 숨 쉬는 것과 같습니다. 얼핏, 이 분야의 대단한 전문가인 양 들리는 말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공기의 존재를 잊고 살 듯, 그 중요성을 시시때때로 잊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무궁무진한 것이 기록의 세계입니다.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기록하고 싶어 하는 게 인간의 기본 욕구이기 때문인지, 우리는 수없이 많은 기록을 남겨왔고 남기고 있고 앞으로도 남길 것이기 때문이죠.     


월간 옥이네 8월호에서는 지역의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을 만나봤습니다. 지방소멸을 이야기하는 시대, 지역의 것은 하찮게 여기기도 하는 시대에 이들이 시간과 노력, 때로는 큰돈을 들여 지역을 기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확실한 것은, 이들이 없었다면 가만히 흘려보냈을 기억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기록 행위를 하는 이들은 훨씬 더 많지만, 시간과 지면의 한계로 극히 일부의 이야기만 담는 것을 아쉬움으로 남깁니다. 지역 기록물의 종류와 내용, 연대를 정리하고 소개하지 못한 것 역시 아쉽습니다. 같은 도내 다른 지자체인 증평군과 저 멀리 강원도에서 기록 활동을 이어가는 강원아카이브협동조합의 이야기로 이 아쉬움을 채워봅니다. 더불어 세월호 참사, 형제복지원 생존자, 국보법 피해자 등의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을 써내려가는 인권 기록 활동가 유해정 씨의 이야기가 또 다른 울림이 되기를 바랍니다.     


종이매체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시대이지만, 펜대를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권력입니다. 그것이 어디든 활자로 남기는 것이 훗날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음을 다시 기억합니다. 또한, 펜대와 종이, 마이크가 없어 ‘기록 투쟁’에서 밀려나 있는 삶을 떠올립니다.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습니다. “내 이야기가 뭐라고 이걸 기사로 써.” 하지만 지역을 지키며 살아온 숱한 날이 아무 것도 아닐 리 없음을, 월간 옥이네는 기록을 통해 증명해 나가는 데 계속 힘을 쏟겠습니다.     


비 소식이 계속 이어집니다. 내 옆의 이웃과 저 먼 들녘의 농민,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고통 받고 있을 생명들을 생각하는 계절이 되길 희망합니다. 더불어, 왜 우리 동네 수해 소식은 내가 보는 TV 뉴스에선 찾아보기 힘든 지도요. 월간 옥이네 8월호가 이야기한 지역 기록과는 약간 결이 다르지만, 이 모든 것이 지역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의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할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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