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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마감을 우습게 여긴 대가

월간 옥이네 2020년 9월호(VOL.39) 여는 글

“마감일에 맞춰서 글을 쓰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네요.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습니다.”     


이번 마감을 진행하면서 만난, 한 동네 분이 전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최근 외부에 제출할 글 한 편을 완성하면서 마감이 왜 ‘데드라인’인지 그 중의적 의미를 생각하게 됐다고요.     


정해진 일을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압박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기한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의 조급증을 불러오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시간에 쫓겨 성에 차지 않은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때는 더없는 허탈함과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죠.     


저희의 이번 마감도 특히 그랬습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19 확진자 증가로 예정했던 취재의 절반 이상을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힌 것입니다. 전광훈 목사 주도의 광화문 집회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확진자 증가세는, 옥천 역시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추가 확진자 발생에 지역사회는 그야말로 꽁꽁 얼어붙은 듯합니다.     


원래 지면에 담아 나누고자 했던 이야기를, 다음 달에는 다시 풀어놓을 수 있을까요? 확언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마감’을 경험하고 삽니다. 태어나 자라고 살아가다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할 우리의 삶 자체가, 사실은 인생의 마감을 향해 달려가는 길고 긴 여정이기도 하지요.     


코로나19에도 마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 마감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어도 이것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보장만 있다면. 그렇다면 지금을 견디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는데요. 물론, 코로나19가 분명 종식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동안 인류가 각종 전염병을 극복해왔던 것처럼. 이 정도 믿음도 갖지 않는다면 지금을 견디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고요.     


많은 이가 이미 알고 있지만, 코로나19 발생 배경에서 기후위기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스스로 마감을 찾아가야 하는 일이라면, 기후위기는 사실 이미 마감이 정해진 일입니다. 1950년대 이후 뚜렷하게 나타난 지구온난화의 경고를 오랫동안 무시해왔기에, 우리는 당장 기후위기라는 숙제의 마감을 급하게, 정신없이 해치워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덕에, 해결해야 할 숙제의 양은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상태고요.     


재앙이 될 기후위기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한 ‘지구 평균 온도 상승 1.5도’. 이를 막을 수 있는 기한은 사실상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기후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 구조를 탈피하고 과소비와 과잉생산, 육류 생산과 소비를 극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실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코로나19와 길고 긴 장마, 연이은 가을 태풍이 어쩌면 최종 경고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정해진 시간 안에 우리가 끝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다시 새기고 행동하는 9월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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