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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알면서도 모르는 것을 위해

월간 옥이네 2021년 1월호(VOL.43) 여는 글

아쉬움이 남지 않는 시간이 어디 있겠냐마는, 유독 힘들던 2020년이 지났습니다. 서로를 직접 만나 ‘고생했다’ 다독일 수도 없던 터라 더 그랬던 듯합니다. 여전히 코로나19의 짙은 그림자도 사라지지 않았고요.   

연말연시에 들려오는 소식도 쓰리기만 합니다. 한파 속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던 이주노동자의 죽음에 이어 ‘정인이 사건’으로 알려진 16개월 영아 학대 사망 사건은, 얼마나 많은 약자의 삶이 가려져 있는지 새삼 깨닫게 해주는 고통이었습니다.     


이렇게 ‘알면서도 모르는’ 일이 많습니다. 이주노동자나 아동, 여성, 장애인, 청년, 노인 그리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이들의 고통은 우리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월간 옥이네 새해 1월호에는 1인 가구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약자들의 고통에 비춰보니 여전히 모자라고 아쉬운 지면입니다. 매월 하는 다짐입니다만, 새해에는 더 많은 곳으로, 더 많은 사람을 만나러 더욱 부지런해지는 옥이네가 되겠습니다.     


옥이네 마감이 한창 진행되던 때, 전국적으로 많은 눈과 한파가 찾아왔습니다. 옥천도 눈으로 온통 하얗게 반짝입니다만, 이 속에도 이 풍경을 제대로 누릴 수 없는 처지의 생명이 분명 존재합니다. 가깝게는 옥이네 편집국이 있는 골목의 길고양이가 그렇고, 이번 호 특집 취재를 하며 만난 홀몸노인들이 그렇습니다. 조금 더 눈을 돌리니, 주민과 합의 없이 진행된 태양광 사업을 반대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안남면 주민들도 보입니다. “‘태양광’이라면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인데 이게 왜 문제냐”고 물으실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이 역시 외부 자본이 대규모로 몰려들어와 마을 환경을 파괴하고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잘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문제가 됩니다. 그렇게, 내가 선 자리에서 보이는 풍경이 모두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새겨봅니다.      


언젠가 소금쟁이책방에서 연말을 맞아 좋은 글귀를 나누는 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뽑았던 문구가 떠오릅니다.      


“나는 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오롯한 인간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하겠다.” -헬렌 켈러      


타인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내 고통이 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인간다워집니다. 옥이네는 작은 시골 잡지입니다만, 그래서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는 없습니다만, 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하는 잡지가 되겠습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를 맞아 독자 여러분께 작은 선물을 보냅니다. 지난해 옥이네 표지(그림: 우영)로 만든 2021년 달력 엽서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일상 한편을 따사로이 채우길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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