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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주민이 주인 되는 ‘더불어 사는 삶’

월간 옥이네 2020년 12월호(VOL.42) 여는 글

옥천에 오기 전인 학생 시절, 학교 근처에 있던 한글교실에 꽤 오래 봉사활동을 나간 기억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한글을 가르쳐드리는 활동이었는데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온 시간이었습니다. 60~70대의 여성이 한 공간에 모여, 한 뜻으로 배움의 열정을 태운다는 것이, 당시 학생이던 저 자신을 여러 모로 돌아보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이 있음에도 처음 옥천에 와 만나게 된 ‘안남어머니학교’와 ‘안내행복한학교’는 또 다른 충격이었습니다. 안남면과 안내면, 인구가 많지도 않은 두 면 지역에 수십 명의 어머니 학생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주민 활동가들이 함께 한다는 것.     


그런 활동은 소위 말해 교육 전문가나 관련 기관이 ‘판을 깔고’ 거기 동네 사람들이 ‘발을 담그는’ 것으로만 알던 무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죠. 얼마나 지역을 알지 못했으며, 또 얼마나 대상화 하고 있던 건지요.     

2020년의 마지막, 월간 옥이네는 옥천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 문해학교 ‘안남어머니학교’를 담았습니다. 개교 당시에만 50여명의 학생이 모일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안남어머니학교는, 현재는 고령화로 학생 수가 절반 가까이 감소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곳을 중심으로 안남이 그리는 자치와 자급의 꿈은 계속 커져가고 있습니다.      


안남어머니학교와 안남 사람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으며 걸어온 무수히 많은 시간을, 일부나마 지면에 남기게 됐습니다. 여기서 채 다루지 못한 안남어머니학교의 남은 이야기, 그리고 안내행복한학교를 비롯한 지역의 또 다른 문해교육 이야기는 월간 옥이네의 다음 숙제로 가져가겠습니다.     


지역에는 다양한 교육적 필요가 있지만, 어느 지역에서도 그 필요가 완전히 충족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지역은 마냥 부족하고 모자라기만 한 공간일까요? 그런 우매한 질문에 이번 호 월간 옥이네를 건네주고 싶습니다.     


지역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공백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활동은 곧 지역 공동체 회복의 기반이 됩니다. 안남어머니학교를 비롯해 지난번부터 지면을 통해 꾸준히 소식을 전하고 있는 옥천 Too의 청소년 기본소득 실험, 이번호에서 소개한 보은 판동초의 매점 기본소득, 옥천 징검다리학교 활동,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지역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     


지역 주민이 자생력을 갖고 각자의 삶에서 주체성을 찾으며 동시에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 그런 기운이 우리 지역 곳곳으로, 나아가 옥천 밖 다른 공동체로 계속 뻗어나가기를 기원합니다.     


겨울이 되면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부디 안전하고 건강한 연말연시 보내시기 바랍니다. 새해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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