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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걷는 사람들 Sep 19. 2018

글을 시작하며-이론과 현실의 사이 어디쯤에서

#1 [민주경희 기고글-2017년 11월]

아래의 글은 경희대학교 총 민주동문회 동문회보 '민주경희'에 2017년 11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처음 학부 때는 사학을 전공했지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사회심리학 전공)을 졸업하고 10년 넘게 그와 관련된 일을 해왔네요. 경희대 총 민주동문회 사무국에서 제게 '심리학으로 바라본 세상'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 말씀해주셔서 2017년 11월부터 2020년 현재까지 매달 기고하는 중입니다.  


월요일 아침마다 전쟁입니다.

맞벌이인 저희 부부는 4살 딸아이와 주말을 함께 보내고 맞이 하는 월요일 아침이 참 힘이 듭니다.

직장이 멀어 아이가 일어나기 전, 출근하는 아내 대신 아이를 깨워 씻기고 밥을 먹이고, 제 취향이 생겨 아침마다 맘에 드는 옷을 입겠다는 아이를 보며, 아빠는 매일 아침 속이 탑니다.

아무리 아빠가 대표인 회사라지만, 애는 저만 키우는 것이 아니니 동료들 눈치도 보이고, 저와 정확히 40살 차이 나는 딸아이 돌보느라 체력도 바닥입니다.


아이를 갖게 되었을 때, 저는 제 전공인 사학과 두 번째 전공인 심리학을 공부했으니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저명한 교육학자이자 발달심리학자인 Piaget가 3명의 자식을 연구대상으로 수많은 이론과 연구를 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학부시절 보던 발달심리학 책을 다시 꺼내 읽고 논문을 찾아 읽으며 주변의 부모들이 말하는 육아법은 한 귀로 흘렸습니다. 각자의 부모는 각자의 자식만 보고 키우니, '모든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육아법이란 없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수많은 육아법과 관련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딱 두 가지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일관성 있는 부모와 자율적인 아이'


얼마나 멋진가요? 아이의 주양육자인 부모가 육아에 대하여 상황에 따라 일관적일 뿐만 아니라 부모 상호 간에도 일관성을 유지한다면 아이가 혼란스러울 일은 없겠지요. 또한 '주도적인 아이'로 키우겠다는, 부모가 일일이 통제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아이가 되었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키울 수만 있다면 발달심리학이나 교육학의 모범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저는 아마 떼돈을 벌었을 겁니다.


오늘 엄마 아빠와 헤어지기 싫다며 내내 울다가 겨우 등원에 성공해서, 어린이집 신발장에서 30분 내내 우는 아이를 달래며, 또 한 번 저의 원칙과 학창 시절 배웠던 그 수많은 이론들은 무참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분리불안이나 애착의 문제인가?'


아이가 떨어지기 싫어하는, 주 양육자가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아이가 경험하는 분리불안이나, 관계에 대한 애착 문제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론과 개념은 넘쳐나는데, 발달 심리학 책 어디를 봐도 '어린이집 신발장서 30분 우는 아이 달래기'를 가르쳐주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등원할 때마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를 위해 구매한 ‘엄마 아빠와 헤어지기 싫어’라는 동화책 이야기에도, 아빠의 사랑 표현에도, 과자와 사탕으로 꼬셔봐도 딸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30분이나 울다가 출근이 다급해진 저는 다시 어린이집 안으로의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OO아, 왜 어린이집 가기 싫어? 아빠한테 말해줄래?"


그런데 그렇게 울던 아이는 엉뚱하게도 어린이집 안이 더워서 들어가기 싫고, 모기 때문에 잠을 못 잔 상태라서 그렇다더군요. 아빠,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서라기보단 그냥 피곤하고 더워서라니요… 결국 선생님이 시원하게 해 주고 들어가서 자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해주고 등원을 마쳤습니다.


매슬로우(A. Maslow)는 그의 이론 욕구 5단계에서 가장 하위 차원의 욕구로 생리적 차원의 욕구를 가장 기본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욕구로 보고 있습니다. 덥고 잠도 못 잤는데, 아빠는 3단계인 애정과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떠올렸던 겁니다. 교과서나 책에서 보는 '분리불안', '애착',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이론'은 아무리 잘 알아도, 그때 그때 필요한 상황에 맞추어 적용되지 않는다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만 바라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한다면서 어떻게 보면 상대방이 내면 깊숙이 필요한 것이 아닌, 그냥 자신이 보고 느끼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려 합니다. 한 명의 어린 자식이 원하는 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부모가 생판 모르는 남을 이해하고 설득하려 한다면 가능할까요? 아마도 진정 누군가를 도와주고 이해하려 한다면, 정말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심리’를 잘 아는 것이 아닐지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육아에 힘쓰시는 모든 부모님들, 이미 겪으신 부모님들 존경합니다.


[출처] 2017년 10월 "민주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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